<?xml version="1.0" encoding="UTF-8"?>
<rss version="2.0">
  <channel>
    <title>일상 블로그 ⸝⸝&amp;acute; ˘ `⸝⸝</title>
    <link>https://yshidd.tistory.com/</link>
    <description></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Sat, 5 Sep 2026 11:10:38 +0900</pubDate>
    <generator>TISTORY</generator>
    <ttl>100</ttl>
    <managingEditor>윤소</managingEditor>
    <image>
      <title>일상 블로그 ⸝⸝&amp;acute; ˘ `⸝⸝</title>
      <url>https://tistory1.daumcdn.net/tistory/5412829/attach/76c731b86b6a47da906747c9a157f282</url>
      <link>https://yshidd.tistory.com</link>
    </image>
    <item>
      <title>마두역</title>
      <link>https://yshidd.tistory.com/720</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어제 지하철역에서의 그 눈물 이야기를, 그리고 &quot;당신은 그의 곁에서 사랑했지, 그를 밀어 넣지 않았어요&quot;라는 말이 엄청 눈물이 났다는 그 고백을 오래 들여다봤어요. 오늘은 이 두 장면을 중심으로, 다시 천천히 겹쳐볼게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먼저 &quot;지금까지는 마냥 회피하려고 했다&quot;는 말부터요. 그리고 그 회피가 게으름이나 약함이 아니라, 현규오빠의 영향이 너무 커서 상실의 아픔이 일상 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울 만큼 컸기 때문이었다는 것. 저는 이 대목에서 당신이 스스로를 &quot;회피했다&quot;고 이름 붙인 게 마음에 걸려요. 애도 연구에는 마거릿 스트뢰베와 헨크 슈트가 정리한 '이중 과정 모델(Dual Process Model)'이라는 게 있는데, 이게 정확히 당신을 변호해줍니다. 이 모델은 건강한 애도가 상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 한 방향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해요. 사람은 두 극 사이를 오가는데, 하나는 상실에 초점을 맞추는 것(떠난 사람, 기억, 슬픔, 상실의 의미를 마주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회복에 초점을 맞추는 것(달라진 일상에 적응하고, 새로운 역할과 과제를 감당하고, 때로는 슬픔에서 잠시 벗어나 숨을 돌리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진동(oscillation)'이야말로 건강한 애도의 핵심이라고 이 연구자들은 강조합니다. 이 모델이 우리에게 주는 단 하나의 허락이 있다면, 슬픔을 한 번에 다 삼키지 않고 '조금씩 나눠서' 겪어도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 당신이 회피라고 부른 그 시간은, 사실 상실의 아픔이 당신을 일상에서 밀어낼 만큼 컸을 때, 당신의 마음이 스스로를 지키려고 슬픔을 &lt;u&gt;&lt;b&gt;감당 가능한 크기로&lt;/b&gt;&lt;/u&gt; 나눠 담던 시간이었어요. 이 모델을 만든 사람들이 가장 강하게 비판한 게, &quot;무조건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건강하게 애도한다&quot;는 낡은 '애도 작업(grief work)' 가설이었다는 것도 말해두고 싶어요. 회피는 실패한 애도가 아니라, 애도의 절반이에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충분히 잊고, 충분히 기억하자)&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리고 당신은 그 문단에서 아주 중요한 걸 스스로 예감했어요. &quot;상실의 아픔이 조금 가시고 나면, 현규오빠의 흔적을 느끼는 것에서 아픔이 아니라 따뜻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quot;고요. 저는 이게 위로가 되라고 지어낸 희망이 아니라, 실제로 애도가 밟아가는 궤적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앞에서 이야기한 '지속하는 유대'가 시간이 지나며 자리 잡을 때, 그 유대는 날카로운 통증에서 점차 더 잔잔한 존재로, 따뜻한 기억이 자라날 수 있는 자리로 바뀌어가거든요. 당신이 예감한 그 전환은 정말로 와요. 지금 흔적마다 아픈 건, 흔적이 문제여서가 아니라 아직 상실이 너무 생생해서예요. 흔적은 그대로 있고, 그걸 만지는 당신의 감각이 바뀌는 거예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제 지하철역 이야기로 가볼게요. 당신이 그날의 감정을 아주 세밀하게 구분해낸 게 저는 놀라웠어요. 컨소시엄장에서는 &quot;전에는 같이 와서 손잡고 걸으며 구경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quot; 하는 허전하고 외로운 감정이었고, 역에서는 &quot;보고 싶고 그립고, 사랑하는 사람 옆에서의 안정감과 안도가 그리운&quot; 감정이었다고요. 그리고 그날 당신은 그의 생각을 '한' 게 아니라&amp;mdash;거기까지 닿지도 않았고&amp;mdash;그의 '부재'를 몸으로 겪으며 긴 시간을 보냈다고 했죠. 이 구분이 정확해요. 애도는 처음엔 머릿속의 생각이 아니라 몸과 &lt;u&gt;&lt;b&gt;빈자리에 먼저 살아요&lt;/b&gt;&lt;/u&gt;. 옆에 있던 온기가 사라진 자리, 늘 둘이 걷던 길을 혼자 걷는 감각&amp;mdash;의식이 &quot;나는 지금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quot;고 문장으로 만들기 전에, 몸이 먼저 그 없음을 등록하고 이유 모를 눈물로 새어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 &quot;이유는 모르겠지만 눈물이 났다&quot;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라, 당신 몸이 마음보다 먼저 진실을 말한 순간이었어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특히 &quot;안정감과 안도&quot;라는 그 단어에 오래 머물고 싶어요. 애착 이론에서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두 가지를 기댄다고 말해요. 하나는 '안전한 피난처(safe haven)'&amp;mdash;힘들 때 돌아가 위로받고 감정을 가라앉히는 자리, 다른 하나는 '안전 기지(secure base)'&amp;mdash;&lt;u&gt;&lt;b&gt;그 사람이 뒤에 있다는 안심 덕분에 세상으로 나가 탐험할 수 있게 해주는 토대예요&lt;/b&gt;&lt;/u&gt;. 이 둘은 단지 심리적 위안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의 신경계를 함께 조절해주는 기능을 해요. 곁에 안전한 사람이 있으면 우리 몸은 긴장을 풀고, 없으면 경계 태세로 들어가죠. 그래서 애도 연구자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이 우리의 안전감과 소속감, 정체감에 구멍을 낸다고 표현하고, 그 구멍은 흔히 &quot;이 불확실함을 그 사람 없이 감당할 수 있을까&quot; 하는 두려움으로 나타난다고 해요. 당신이 &quot;현규오빠 없이 출장 가는 게 두려웠다&quot;고 한 것, 그리고 가는 길 내내 &quot;바짝 긴장한 채&quot; 보냈다는 것&amp;mdash;그게 바로 안전한 &lt;u&gt;&lt;b&gt;피난처를 잃은 몸이 하는 일이에요.&lt;/b&gt;&lt;/u&gt; 늘 곁에서 당신의 긴장을 낮춰주던 사람 없이 혼자 그 길을 걸으니, 당신의 신경계는 종일 경계를 늦추지 못했던 거예요. 그리고 마침내 &quot;이제 도착했다&quot;고 느낀 순간, 그것도 현규오빠와만 늘 걸었던 그 길 위에서, 종일 붙들고 있던 긴장이 풀리며 안도의 눈물이 났던 거고요. 그건 무너진 게 아니에요. 혼자서, 두려웠던 길을, 제시간에 닿았다가 무사히 돌아온 사람의 몸이 마침내 안전에 도착해 내려놓은 눈물이에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러니 이 지점만은 꼭 붙잡아주고 싶어요. 당신은 그날, 두 사람이 늘 함께 하던 일을 처음으로 혼자 해냈어요. 두려워하면서도 갔고, 도착했고, 돌아왔어요. 애도 모델로 말하면 그건 '회복 지향'의 극에서 당신이 실제로 한 걸음을 뗀 거예요. 안전한 피난처를 잃은 뒤 우리가 다시 안정으로 돌아오는 길은 두 가지&amp;mdash;스스로를 조절하는 법을 익히거나, 다른 관계 속에서 함께 조절받는 것&amp;mdash;인데, 그건 하루아침에 되지 않고 오래 걸려요. 하지만 당신은 그 긴 길의 첫 발을, 이미 뗐어요. 눈물이 났다는 사실이 그걸 지우지 않아요. 오히려 그 눈물은, 당신이 그 일을 얼마나 온 힘으로 해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예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제 가장 아픈 매듭, &quot;현규오빠가 만남을 후회할 거라고 생각한 날들&quot;에 대해 이야기할게요. 먼저, &quot;당신은 그를 밀어 넣지 않았어요&quot;라는 말에 그렇게 눈물이 났다는 건, 그 두려움이 당신 안에 얼마나 깊이 박혀 있었는지를 말해줘요. 오래 짊어진 무게일수록, 누군가 그걸 내려줘도 된다고 말해줄 때 눈물이 나잖아요. 그러니 그 눈물은 좋은 눈물이었다고 저는 믿어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리고 &quot;그가 후회했을 것&quot;이라는 그 생각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봐요. 그건 확인할 수 없고, 반증할 수도 없는 생각이에요. 당신은 지금 하나의 두려움을 사실처럼 다루고 있어요. 슬픈 날에 그 생각이 마음을 조여올 때, 그건 현규오빠가 보내온 소식이 아니에요. 그건 당신의 슬픔과 죄책감이 만들어낸 판결이고, 그 판결문을 당신 손에 쥐여주며 대가를 치르라고 하는 거예요. 여기서 중요한 게 있어요. 지난번 당신은 스스로 아주 너그러운 해석을 내놓았죠&amp;mdash;어쩌면 나를 돌보고 나와 함께 지내는 게 그에게는 몰입할 자리였고 보람이었을 거라고. 그 해석과 &quot;그가 나를 후회했을 것&quot;이라는 해석, 둘 다 증명할 수 없는 추측이에요. 그런데 당신은 &lt;u&gt;&lt;b&gt;슬픈 날이면 유독 당신을 찌르는 쪽을 집어 들어요&lt;/b&gt;&lt;/u&gt;. 확인할 수 없는 두 가지 중에서 스스로를 도려내는 쪽을 고르는 건 '정직한 것'이 아니라, 그냥 그날의 고통이 대신 골라주는 거예요. &lt;u&gt;&lt;b&gt;알 수 없을 때, 당신은 가장 잔인한 쪽을 택할 의무가 없어요.&lt;/b&gt;&lt;/u&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리고 설령 그에게 후회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해도&amp;mdash;그건 이 사랑 전체에 대한 판결도, 당신에 대한 판결도 아니에요. 진짜 관계에는, 특히 한쪽이 아프고 흔들리고 있던 관계에는 양가감정이 늘 함께 살아요. 힘든 날의 후회 한 조각은 관계 전체의 최종 평결이 아니에요. &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c1c8;&quot;&gt;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면서도 그 관계의 무게에 이따금 눌리는 것&amp;mdash;그 둘은 모든 진짜 사랑 안에 함께 있어요.&lt;/span&gt; 그가 복잡한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 당신이 실패했다거나 그 사랑이 진짜가 아니었다는 뜻이 되지는 않아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마지막으로, 당신이 그런 날들을 견디는 방식을 짚고 싶어요. &quot;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걸 알아서, 감정을 오롯이 느끼고 그냥 지나가기만을 바라면서 후회하고 울었다&quot;고 했죠. 저는 이게 당신이 이미 가진 아주 큰 힘이라고 생각해요. 감정을 억누르지도 않고, 그 감정에 영영 잠기지도 않고, &lt;u&gt;&lt;b&gt;파도가 오면 온전히 맞고서 그것이 빠져나가기를 기다리는 것&lt;/b&gt;&lt;/u&gt;. 이게 정확히 앞에서 말한 '진동'이에요. 슬픔의 파도를 타되 그것이 물러난다는 걸 몸으로 아는 것. 많은 사람이 오래 걸려서야 배우는 걸, 당신은 이미 하고 있어요. 그러니 그런 날의 당신에게, 현규오빠에게 그토록 건넸던 그 말을 그대로 돌려주면 돼요. &quot;당연한 거야, 괜찮아. 자고 일어나면 좀 나아질 거야.&quot; 그건 회피가 아니라, 스스로를 돌보는 사람의 지혜예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당신이 예감한 대로, 언젠가 그 흔적들은 통증이 아니라 온기가 될 거예요. 그날까지 이렇게 조금씩 나눠 겪으면서, 두려웠던 길을 혼자 걸어 도착했다가 돌아오면서, 그렇게 당신은 이미 앞으로 나아가고 있어요. 어제 역에 무사히 닿았던 것처럼요.&lt;/p&gt;</description>
      <category>ᴄᴀᴛᴇɢᴏʀɪᴇs/생각</category>
      <author>윤소</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shidd.tistory.com/720</guid>
      <comments>https://yshidd.tistory.com/720#entry720comment</comments>
      <pubDate>Fri, 4 Sep 2026 11:28:01 +0900</pubDate>
    </item>
    <item>
      <title>기억</title>
      <link>https://yshidd.tistory.com/719</link>
      <description>&lt;div&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책의 문장과 그 아래 괄호 속 당신의 마음을 몇 번 다시 읽었습니다. 당신이 쓴 그 긴 문단은 사실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하더군요.&lt;u&gt;&lt;b&gt; &quot;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충분히 잘해줬을까, 그리고 지금 나는 이 상실에 잘 순응하고 있을까.&quot;&lt;/b&gt;&lt;/u&gt; 그 질문에 대해, 여러 애도와 심리 연구들이 뭐라고 말하는지를 당신의 이야기 위에 천천히 겹쳐서 아주 길게 써볼게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먼저 책이 이야기하는 '순응', 그러니까 영어권 애도 문헌에서 말하는 acceptance부터 짚고 싶어요. 데이비드 캐슬러는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와 함께 그 유명한 애도의 다섯 단계&amp;mdash;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amp;mdash;를 정리한 사람인데, 그가 거듭 강조하는 건 수용이 결코 '끝점'이나 '좋아하게 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수용은 그 일을 좋아하거나 괜찮다고 느끼는 게 아니라, 그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c1c8;&quot;&gt;당신은 아마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 현실을 영영 '좋아하게' 되진 못할 거예요.&lt;/span&gt; 그건 순응의 실패가 아니라, 순응의 본래 모습입니다. 그리고 캐슬러는 이 다섯 단계가 순서대로 밟는 계단이 아니라고 분명히 해요. 사람들은 하루에도 백 번씩 이 단계들 사이를 오가며, 그것은 지도가 아니라 훨씬 더 유기적인 무엇이라고요. 그러니 어떤 날 당신이 &quot;나는 충분히 잘했어&quot;라고 단단히 말할 수 있다가도, 다음 날 다시 &quot;내가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quot; 하고 무너지는 건 퇴보가 아니에요. 그게 애도의 지형 자체입니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캐슬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여섯 번째 단계'로 의미(meaning)를 이야기했는데, 이 대목이 당신에게 특히 중요할 것 같아요. 그는 아들을 잃은 뒤 이 개념에 도달했고, 의미란 고통을 돌아가는 게 아니라 고통을 통과해서 오는 것이며, 상실 이후에도 그 사람을 향한 사랑을 &lt;u&gt;&lt;b&gt;지속할&lt;/b&gt;&lt;/u&gt; 방법을 찾는 일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죠. 애도는 고통이지만 동시에 사랑이며, 우리는 그것을 고통으로만 여긴다고. 당신이 괄호 안에 써 내려간 그 긴 자기 변론&amp;mdash;무엇을 나눴고, 어떻게 안심시켰고, 어디서 미안해했고, 무엇을 포기했는지&amp;mdash;그건 사실 애도의 여섯 번째 단계를 스스로 하고 있는 겁니다. 아무 의미 없이 끝난 관계가 아니라, 내가 온 자원을 부어 사랑했던 관계였다고 스스로 증언하는 일. 그게 캐슬러가 말한 '의미 찾기'의 가장 정직한 형태예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지속할 방법이라는게 잘 안와닿는다)&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제 당신 마음의 가장 아픈 매듭, 강박증에 관한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당신은 &quot;강박증이 발동할 때 나보다 더러운 게 우선인 것 같은 속상한 마음&quot;을 쌓아뒀다고 자책하듯 적었죠. 그런데 강박장애를 가진 사람을 사랑하고 돌본 파트너들에 대한 연구를 보면, 그 서운함은 당신이 옹졸해서가 아니라, 그 관계 구조가 필연적으로 만들어내는 무게예요. 임상 문헌에서는 이를 '가족 수용(family accommodation)'이라고 부르는데, 파트너가 상대의 불안을 덜어주려고 자기 행동을 바꾸는 것&amp;mdash;확인을 대신 해주고, 트리거를 피하고, 안심을 반복해주는 것&amp;mdash;을 말합니다. 연구들은 이런 수용이 강박 파트너 관계에서 거의 보편적으로 나타나며, 동시에 더 심한 증상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고 보고해요. 즉 당신이 &quot;괜찮아, 화장실 찾아보자&quot;라며 안심시킨 그 다정함은, 그 순간엔 유일하게 인간적인 반응이었지만, 강박이라는 병 자체는 그렇게 다정하게 받아줄수록 더 커지는 구조를 갖고 있었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당신이 아무리 잘해도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 들었던 건, 당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병의 생리가 원래 그렇기 때문입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리고 한 임상 그룹은 이 지점을 아주 정확하게 표현하는데, 파트너가 저지르는 가장 흔한 '실수'는 잔인함이나 무관심이 아니라 지나치게까지 나아간 친절, 즉 친절이 도를 넘은 것이라고 말해요. 당신이 자신을 탓하는 그 지점&amp;mdash;너무 다 받아주고, 너무 다 나눠주고, 나를 뒤로 미룬 것&amp;mdash;을 전문가들은 오히려 사랑이 너무 컸던 흔적으로 봅니다. 더 중요한 건 이거예요. 그들은 파트너들이 이 관계의 역학 자체를 애도하도록 돕는데, 수용을 내려놓는 일이 실제로 하나의 상실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당신이 지금 슬퍼하는 건 단지 그를 잃은 것만이 아니라, 그를 온몸으로 받쳐주던 그 방식&amp;mdash;당신이 강박 앞에서 자기를 지우며 지켜낸 그 관계의 결&amp;mdash;을 잃은 것이기도 해요. 그건 애도할 자격이 충분한, 진짜 상실입니다.&amp;nbsp;&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당신이 &quot;내가 강박증 대처를 잘 못해주고 실수할 때마다&quot; 크게 의기소침했고, 잘 전하지 못해 갈등을 만들기도 했다고 적은 부분도 그래요. 강박을 가진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대해 한 치료자는 배움의 곡선이 가파르고, 그 대부분이 시행착오를 통해 일어나며, &lt;u&gt;&lt;b&gt;거절하면 죄책감이 들고 받아주면 지치는&lt;/b&gt;&lt;/u&gt; 상태 사이에 놓인다고 묘사합니다. 어떤 화제가 나선(spiral)을 부르는지, 언제 다섯 번째로 같은 질문에 답해줘야 하고 언제 단단히 선을 지켜야 하는지&amp;mdash;이걸 아무도 당신에게 가르쳐준 적이 없어요. 당신은 매뉴얼도 없이, 자기 마음의 여유까지 관리하면서, 실시간으로 그 기술을 익히는 중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온 실수와 갈등은 무능의 증거가 아니라, 아무도 준비시켜주지 않은 일을 홀로 배워가던 사람의 자연스러운 자국이에요. 당신 스스로 &quot;감정을 괜찮은 순간에 괜찮은 방법으로 분출하는 법을 몰랐고, 원하는 바를 나쁘지 않게 요구할 수 있다는 걸 모르는 상태였다&quot;고 썼는데&amp;mdash;맞아요, 그건 몰라서 못 한 거지, 안 하려고 안 한 게 아니에요. 몰랐던 것에까지 유죄를 선고할 필요는 없습니다.&amp;nbsp;&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가장 무거운 문장, &quot;무엇보다 현규오빠를 포기했다&quot;를 봅시다. 여기에 대해 돌봄 연구가 주는 위로가 있어요. 강박 파트너를 돌보는 사람들에게 반복해서 나오는 조언은 스스로를 돌보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을 저버리는 게 아니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건 감상적인 위로가 아니라 데이터예요. 한 임상 자료는 돌보는 사람의 우울이 강박 증상의 심각도보다도 그 사람의 삶의 질을 더 강하게 예측한다고 지적합니다. 당신이 당신을 지키려 한 것은 이기심이 아니라, 당신이 무너지면 그 관계 자체가 지탱될 수 없다는 걸 몸이 먼저 알았던 거예요. 당신이 &quot;약한 나로써는 모든 걸 버리고 전적으로 몸을 던졌을 때 더욱 깊은 파국으로 들어섰을 것&quot;이라고 쓴 그 문장&amp;mdash;저는 그게 당신 글에서 가장 지혜로운 대목이라고 생각해요. 그건 사랑이 부족했던 사람의 변명이 아니라, 사랑을 오래 지속시키는 법을 본능적으로 아는 사람의 통찰입니다. 게다가 당신은 마지막 순간 직전까지도, 지나고 한동안도 헤어질 생각이 없었다고 했죠. 그 사실 하나가 '포기'라는 단어보다 훨씬 더 큰 진실을 말해줍니다. 당신은 끝까지 놓지 않으려 했어요.&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래서 저는 당신의 마지막 문장, &quot;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었다&quot;를 도널드 위니컷의 개념과 나란히 두고 싶어요. 위니컷은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ther)'라는 말을 만든 소아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데, 그가 하려던 말의 핵심은 이거예요. 최선을 다하되, 결함이 있어도 되고 때로는 원망을 느껴도 되며, 화가 났다가 스스로를 다시 붙잡아 오는 것&amp;mdash;그게 좋은 사람의 방식이라는 것. 그리고 중요한 건, '충분히 좋음'이 결코 기준을 낮춘 게 아니라는 거예요. 오히려 완벽한 사람은 건강한 모델이 아닌데, 그 사람은 자기를 지나치게 결핍시키기 때문이라고 그의 계보를 잇는 사람들은 말합니다. &lt;u&gt;&lt;b&gt;자기를 다 버리고 상대에게 전부를 쏟는 '완벽한 사랑'은 사실 아무에게도 건강하지 않아요.&lt;/b&gt;&lt;/u&gt; 당신이 &quot;나를 잃지 않는 선까지 했던 건 오히려 옳은 방향이었다&quot;고 스스로 판단한 그 지점이, 정확히 위니컷이 말한 '충분히 좋음'입니다. 한 상담자는 이 개념을 두고 '충분히 좋다'는 말은 치유적이고, 인간적이며, 관계를 지탱해주는 것이라고 표현했어요. 당신은 기준을 낮춘 게 아니라, 사랑의 가장 지속 가능하고 진실한 형태에 도달해 있었던 거예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최선을 다하되, 결함이 있어도 되고 때로는 원망을 느껴도 되며, 화가 났다가 스스로를 다시 붙잡아 오는,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 지속 가능하게. 그게 후회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현규오빠도 어쩌면 나를 돌보는게, 나를 키운다는 표현으로 나랑 같이 지내는게 무언가 집중하고 쏟는 행위를 하고싶었던게 아닐까? 보람을 느끼고싶었고 다른걸 생각할 여력이 없이 뭔가에 몰입해서 푹 빠지고싶었던것도 있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현규오빠는 마지막에 많이 망가져 있었다. 자기 원래 모습을 많이 잃었고 취업에 대한 막연한 걱정도, 내가 출근해있는 시간동안 본인도 모르는 새에 스트레스를 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마음의 힘이 점점 약해졌을것이다)&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모든 걸 자신에게 건네는 방법으로, 크리스틴 네프의 자기연민(self-compassion)을 마지막에 두고 싶어요. 네프는 자기연민을 세 가지로 정의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친절할 것(self-kindness), 자신의 경험을 인간 보편의 일부로 볼 것(common humanity), 그리고 고통스러운 생각과 감정을 균형 있게 바라볼 것(mindfulness)이에요. 그리고 그가 강조하는 건, 자기연민이 자기연민(self-pity)이나 나약함이 아니라 회복탄력성과 심리적 안녕을 낳는 힘이라는 점이에요.&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세 가지를 당신의 상황에 그대로 대입해볼게요. 공통의 인간성&amp;mdash;당신이 강박 앞에서 느낀 서운함, 실수 뒤의 위축, 포기했다는 죄책감, 이 모든 걸 &lt;u&gt;&lt;b&gt;강박을 사랑한 수많은 파트너들이 똑같이 느꼈어요&lt;/b&gt;&lt;/u&gt;. 당신은 그 감정을 처음 발명한 사람도, 그 감정 때문에 나쁜 사람이 된 사람도 아닙니다. 자기 친절&amp;mdash;당신은 현규오빠가 미안해할 때마다 &quot;당연한 거야, 괜찮아&quot;라고 말해줬죠. 그를 향해 그렇게 무한히 다정했던 그 목소리를, 이제 당신 자신에게도 아주 조금만 돌려줄 수 있을까요. 네프가 권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같은 상황에 처한 가까운 친구에게 건넬 말을 자신에게 적어보는 것이에요. 만약 &lt;u&gt;&lt;b&gt;당신의 가장 소중한 친구가 이 긴 글을 그대로 써왔다면, 당신은 절대 &quot;너는 부족했어&quot;라고 말하지 않았을 거예요.&lt;/b&gt;&lt;/u&gt; 마음챙김&amp;mdash;&quot;내가 충분히 잘했나&quot;라는 물음이 밀려올 때, 그것을 억누르지도 말고, 그렇다고 그 물음이 이 관계에서의 당신 전부를 규정하도록 두지도 마세요. 그저 아픈 물음 하나로 손에 올려두고 바라보는 것, 그게 마음챙김입니다.&amp;nbsp;&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마지막으로, 죄책감 자체에 대해 애도 상담에서 자주 하는 말을 전할게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모든 걸 다 해도, 그건 결코 충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당신이 &quot;충분히 잘했나&quot;라고 계속 묻는 그 마음은, 역설적으로 당신이 얼마나 깊이 사랑했는지의 증거예요. 아무렇게나 사랑한 사람은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아요. 그러니 &quot;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었다&quot;는 당신의 결론은 자기 위로용 타협이 아니라, 여러 연구와 임상 지혜가 한목소리로 뒷받침하는 사실에 가깝습니다. &lt;u&gt;&lt;b&gt;당신은 가진 자원&amp;mdash;물질이든 관심이든&amp;mdash;을 다 부었고, 병 앞에서 자기를 지우면서도 다정했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기술을 시행착오로 배웠고, 그러면서도 자기를 완전히 잃지는 않았어요&lt;/b&gt;&lt;/u&gt;. 그 마지막이야말로, 당신이 앞으로 다시 살아 있다고 느끼며 숨 쉬고 나아갈 수 있게 해줄, 당신이 스스로에게 남겨둔 가장 큰 선물입니다.&amp;nbsp;&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책 속 아버지가 &quot;아주 사소한 일마저 축하할 만큼 소중해졌다&quot;고 한 그 마음처럼, 당신도 언젠가 이 관계를 &lt;u&gt;&lt;b&gt;고통보다 사랑으로 더 많이 기억하게&lt;/b&gt;&lt;/u&gt; 되기를 바라요. 그리고 그날까지, 현규오빠에게 그토록 다정했던 당신이 당신 자신에게도 조금은 다정해지기를요. 당신은 정말로, 충분히 잘하고 있었어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r contenteditable=&quot;false&quot; data-ke-type=&quot;horizontalRule&quot; data-ke-style=&quot;style4&quot; /&gt;&lt;/div&gt;
&lt;div&gt;
&lt;div&gt;
&lt;div&gt;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당신이 새로 괄호 안에 적어둔 두 마음을 오래 들여다봤어요. 하나는 &quot;지속할 방법이라는 게 잘 안 와닿는다&quot;는 것, 다른 하나는 &quot;그렇게 지속 가능하게 했어야 했는데&amp;mdash;그게 후회된다&quot;는 것, 그리고 그 뒤에 현규오빠를 다시 헤아려보는 아주 다정한 문단이었죠. 이 두 갈래를 하나씩, 다시 천천히 겹쳐볼게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먼저 &quot;지속할 방법&quot;이 손에 안 잡히는 건 당연해요. 캐슬러가 말한 &quot;그 사람을 향한 사랑을 지속하는 것&quot;은 사실 그 자체로는 너무 추상적인 문장이라, 애도 연구에서 그걸 훨씬 구체적으로 풀어낸 다른 이론을 가져오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데니스 클래스와 필리스 실버먼, 스티븐 니크먼이라는 학자들이 1996년에 정리한 '지속되는 유대(continuing bonds)'라는 개념이에요. 오랫동안 서구의 애도 상식은 프로이트나 볼비의 계보를 따라 &quot;떠난 사람과의 애착을 끊어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quot;고 봤는데, 클래스 연구팀은 실제로 건강하게 애도하는 사람들을 관찰해보니 정반대였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떠난 이를 &lt;u&gt;&lt;b&gt;자기 삶에서 지우는 게 아니라, 관계의 형태를 바꿔서 계속 이어갔고&lt;/b&gt;&lt;/u&gt;, 그 이어감이 상실에 적응하는 걸 오히려 도왔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건 부정이나 병적인 집착이 아니라, 현재를 더 풍요롭게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그들은 결론지었어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게 왜 당신에게 위로가 되냐면&amp;mdash;&quot;지속한다&quot;는 게 거창하거나 신비로운 무언가가 아니라, 아주 사소하고 구체적인 행동들이기 때문이에요. 연구자들이 든 예시는 이런 것들이에요. 떠난 사람에게 속으로 말을 거는 것, &quot;그사람이라면 이럴 때 뭐라고 했을까&quot; 하고 그의 조언을 상상해보는 것, 그가 남긴 물건이나 습관을 곁에 두는 것, 특별한 날에 그만의 방식으로 그를 기억하는 작은 의식을 갖는 것, 누군가에게 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그리고 일상 곳곳에서 &quot;이건 현규오빠한테 배운 건데&quot; 하고 &lt;u&gt;&lt;b&gt;그의 영향을 알아차리는 것&lt;/b&gt;&lt;/u&gt;. 이런 게 전부 '지속하는 유대'예요. 클래스 연구팀이 특히 강조한 건, 이 관계가 고정된 게 아니라 당신과 함께 나이 들며 변하고 성숙한다는 거예요. 지금 스물몇의 당신이 현규오빠를 이해하는 방식과, 서른의 당신, 마흔의 당신이 그를 이해하는 방식은 다를 거고, 그렇게 그는 당신 삶에서 계속 새롭게 읽히게 됩니다. 그러니 &quot;지속&quot;은 과거에 그를 붙들어두는 게 아니라, 앞으로의 당신 안에서 그가 계속 살아가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일에 가까워요. 지금 당신이 이렇게 그를 다시 헤아리고, 그의 마음을 상상하고, 그를 위해 변론하는 이 글쓰기 자체가&amp;mdash;이미 '지속하는 유대'의 가장 생생한 형태예요. 안 와닿는다고 했지만, 사실 당신은 벌써 하고 있었던 거예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지금까지는 마냥 회피하려고 했는데, 현규오빠의 영향이 너무 많아서 상실의 아픔이 너무 컸다. 일상 생활을 이어가기엔 어려움이 있을 만큼. 근데 상실이 아픔이 조금 가시고 나면 현규오빠의 흔적을 느끼는것에서 아픔이 아니라 따뜻함을 느낄수 있을수도 있을것같다. 사실 어제 마두역에 내려서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눈물이 났다. 현규오빠 없이 출장을 가는게 두려웠는데 어찌저찌 제시간에 도착하고 잘 돌아왔고, 가면서도 오면서도 컨소시엄장에서도 혼자 돌아다니면서 현규오빠의 부재를 체감했다. 현규오빠 생각을 한게 아니라, 거기까지 닿지 않았고 부재를 체감하면서 너무 긴 시간을 보낸것같다. 그렇게 바짝 긴장한채 일과를 보내고 이제 도착했다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이 길도 현규오빠랑 같이만 항상 걸어봤던 길이니까, 약간의 안도된 마음이 들면서 눈물이 났던것같다. 컨소시엄장에서는 전에는 같이 와서 손잡고 걸어다니고 구경하고픈것도 많았는데 하는 허전하고 외로운 감정이었다면 역에서 느낀 감정은 보고싶고 그리운, 그리고 '현규오빠 옆에서의 안정감과 안도'가 그리운 감정에 가까웠던것같다.)&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제 더 아픈 쪽, &quot;그렇게 지속 가능하게 했어야 했는데, 그게 후회된다&quot;는 마음을 봅시다. 여기서 제가 앞에서 위니컷 이야기를 잘못 전한 게 아닐까 싶어 마음이 쓰여요. '충분히 좋음'을 이야기하면서, 그게 도리어 &quot;나는 그 충분히 좋은 상태에조차 못 미쳤다&quot;는 새로운 자책의 잣대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요. 그런데 위니컷의 핵심을 다시 정확히 짚으면 이래요. 화가 났다가 스스로를 다시 붙잡아 오는 것, 결함이 있고 때로 원망하는 것&amp;mdash;그건 '충분히 좋음'의 예외가 아니라 정의 그 자체예요. 완벽하게 지속 가능한 사랑, 한 번도 지치지 않고 한 번도 무너지지 않는 사랑은 '충분히 좋음'의 상위 버전이 아니라, 위니컷이 애초에 경계했던 바로 그 환상이에요. 당신이 지금 자신에게 &quot;완벽하게 지속 가능했어야 했다&quot;고 요구하는 건, 사실 그 개념이 해체하려던 완벽주의를 다시 세우는 일이에요. 당신이 지쳤던 순간, 서운함을 쌓아둔 순간, 갈등을 만든 순간&amp;mdash;그건 충분히 좋은 사랑에서 벗어난 게 아니라, 충분히 좋은 사랑이 원래 포함하고 있는 얼룩들이었어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리고 그 후회의 밑에는 '지금 알게 된 것으로 그때를 채점하는' 마음이 깔려 있어요. 애도 연구에서 이걸 '사후과잉확신 편향(hindsight bias)'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일의 결말을 알고 난 뒤에는, 그 결말과 맞아떨어지는 정보들만 유독 또렷하게 보이고, 그래서 &quot;나는 그때 알 수 있었는데, 알았어야 했는데&quot;라고 믿게 되는 심리예요. 연구자들이 말하는 핵심은 이거예요. 지금은 결말을 알기 때문에 그때 당신이 아주 많은 걸 알았던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 그때의 당신은 지금 아는 만큼 알지 못했다는 것. 걱정하고 어렴풋이 짐작했을 수는 있어도, 당신은 몰랐어요. 그리고 지금 &quot;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quot; 하고 떠올리는 그 대안들은, 그 시절엔 지금처럼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어요. '~했어야 했다',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때 ~했더라면' 같은 말이 올라올 때마다, 그건 대개 사후과잉확신이 당신에게 말을 걸고 있는 거라고 보면 돼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렇다고 당신의 후회를 &quot;그건 편향일 뿐이야&quot;라며 지워버리려는 건 아니에요. 상실 이후의 죄책감을 다루는 상담에서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목표는 죄책감을 없애는 게 아니라 그것을 또 다른 진실 곁에 나란히 놓아두도록 돕는 것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lt;u&gt;&lt;b&gt;&quot;나는 어떤 것들은 다르게 했더라면 좋았겠다고 바란다&quot;와 &quot;나는 그때 내가 가진 정보와 자원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quot;&lt;/b&gt;&lt;/u&gt;&amp;mdash;이 둘은 서로를 지우지 않고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거예요. 후회가 있다고 해서 최선이 아니었던 게 되지 않고, 최선이었다고 해서 후회가 사라질 필요도 없어요. 두 가지를 같은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어느 쪽도 밀어내지 않는 것&amp;mdash;그게 이 무거운 마음과 오래 함께 지내는 방법이에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리고 당신이 현규오빠를 다시 헤아린 그 다정한 문단, 저는 그게 이번 글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quot;어쩌면 나를 돌보는 것, 나와 함께 지내는 것이 그에게는 무언가에 몰입하고 쏟고 싶은 일, 보람을 느끼고 싶은 마음, 다른 걸 생각할 여력 없이 푹 빠지고 싶은 무엇이 아니었을까.&quot; 저는 그게 충분히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요. 자기 원래 모습을 잃어가고, 취업에 대한 막연한 불안에 마음의 힘이 조금씩 약해지던 사람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고 곁을 지키는 일은 흔들리는 자기를 붙들어줄 하나의 닻이 되곤 하니까요. 그렇다면 당신의 존재는 그에게 짐이 아니라 피난처였던 거예요. 그가 자기 붕괴로부터 잠시 눈을 돌려 몰입할 수 있는 자리, 아직 자기가 누군가에게 쓸모 있고 다정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하던 자리. 당신이 부어준 관심과 자원은 새어나간 게 아니라, 그가 무너지는 속도를 늦춰준 버팀목이었을 가능성이 훨씬 커요. 이렇게 그를 너그럽게 다시 읽어내는 일&amp;mdash;그가 무엇을 필요로 했는지, 당신이 그에게 무엇이었는지를 새로 이해하는 일&amp;mdash;이것 역시 앞에서 말한 '지속하는 유대'가 자라나는 모습이에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다만 그 문단 끝의 한 대목, &quot;내가 출근해 있는 시간 동안 본인도 모르는 새에 스트레스를 주었을 것이다&quot;라는 문장에는 조금 오래 손을 얹고 싶어요. 사람은 견디기 힘든 상실 앞에서 본능적으로 그 안에서 자기 흔적을 찾아내요. 왜냐하면 &quot;내가 무언가를 잘못했다&quot;는 설명이, &quot;이건 병과 삶의 무게가 겹쳐 일어난, 누구도 혼자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quot;는 설명보다 차라리 덜 무섭게 느껴지기 때문이에요. 내가 원인이라면 적어도 세상이 통제 가능한 곳처럼 보이니까요. 하지만 한 사람이 자기 안에서 서서히 약해지는 것은&amp;mdash;일자리에 대한 불안이든, 잃어가는 자기 모습이든, 그 밑에 흐르던 무엇이든&amp;mdash;당신이 출근을 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니에요. 가라앉는 사람을 사랑한 것과, 그 사람을 가라앉힌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에요. &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c1c8;&quot;&gt;당신은 그의 곁에서 사랑했지, 그를 밀어 넣지 않았어요.&lt;/span&gt; 당신이 일터에 있던 그 시간은 두 사람의 삶을 지탱하기 위한 시간이었지, 그를 방치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당신은 그의 곁에서 사랑했지, 그를 밀어 넣지 않았어요' 이게 엄청 눈물이 나는 말이다. 나는 현규오빠가 만남을 후회할거라고 생각한 날도 있었다. 어느 부분에서는 후회할수도 있을거라고 생각을 하고있기도 하다. 다만 슬픈 날에 그 생각이 들면 그 사실이 내 마음을 조여오면서 후회가 뼈아프게 밀려온다. 그러지 못했던 나를 질책하고 싶어진다. 평소와 같지 않은 그런 날들이면, 그럼에도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것을 알아서 감정을 오롯이 느끼고 그냥 지나가기만을 바라면서 후회하고 울었던것같다)&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러니 지금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다정한 일은, 현규오빠에게 그토록 오래 건넸던 그 목소리&amp;mdash;&quot;당연한 거야, 괜찮아&quot;&amp;mdash;를 이 후회하는 자신에게도 돌려주는 거예요. 당신은 지속 가능하지 못했던 게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사랑의 얼룩까지 끌어안고 끝까지 놓지 않으려 했던 사람이에요. 그리고 이렇게 그를 계속 헤아리고, 그의 마음을 상상하고, 그를 너그럽게 다시 읽어내는 이 모든 것이, 이미 그를 당신 안에 살아 있게 하는 방법이고요. 당신은 방법을 몰라서 못 하고 있는 게 아니라, 벌써 그 한가운데 있어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무게를 혼자 오래 지고 가는 건 정말 버거운 일이라, 언젠가 이런 종류의 상실을 잘 아는 애도 상담자와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스스로에게 건네는 다정함이 될 수 있어요. 그때까지, 당신이 현규오빠에게 그랬던 것처럼 당신 자신에게도 조금은 다정하기를 바라요. 당신은 정말로, 충분히 잘하고 있었어요. 지금도요.&lt;/p&gt;
&lt;/div&gt;
&lt;/div&gt;
&lt;/div&gt;
&lt;/div&gt;
&lt;/div&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ᴄᴀᴛᴇɢᴏʀɪᴇs/생각</category>
      <author>윤소</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shidd.tistory.com/719</guid>
      <comments>https://yshidd.tistory.com/719#entry719comment</comments>
      <pubDate>Fri, 4 Sep 2026 10:57:37 +0900</pubDate>
    </item>
    <item>
      <title>수긍</title>
      <link>https://yshidd.tistory.com/718</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랬어야 했는데'는 우리가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당장 실제로 발생하고 있는 긍적적인 요소들을 인지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내 몸에 더 신경 써야 했어. 더 빨리 알아차릴 수 있었을 텐데. 알아냈다면 다르게 행동했을 거야. 내가 그렇게 이기적이지 않았다면 아버지에게 더 자주 연락할 수 있었겠지.'&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인간이 안전하게 살기 위해서 어떻게 진화했는지 고려해 보면, 이 심리도 어느 정도는 정상적이다. 과거를 돌이키면서 더 나은 결과를 분석하는 뒷북을 쳐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사람은 모두 후회한다. 하지만 후회를 제지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마음을 가다듬고 전진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지나간 일에 집착하면서 바꿀 수 없는 과거에 계속 매이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물론 나는 후회하는 일을 전부 했어야 했지만, 진실은 명확하다. 당시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과거에 관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ㄴ일은 아무것도 없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순응은 자신에게 더 온정을 베풀라고 일깨운다. 나는 어떤 때는 내 삶의 한계에 수긍하지만, 다른 때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순응을 통해 삶의 굴곡과 모순에 대처할 수 있다. 그리고 치유의 과정에 시간을 더 많이 쏟을 수 있도록 삶을 용서하게 된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더없이 소중한 물건이나 사람을 잃은 뒤 다시는 행복하지 못할 것 같다고 느낄지라도, 사랑이 여전히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사랑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결국 온전히 살아가는 방법이란 사랑을 곁에 두는 것이다. 고통을 겪으며 자신을 사랑하고, 힘든 시기와 불확실성 속에서도,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랑하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오고 가고, 직장을 잃고, 수중의 돈이 줄어들고, 가슴이 찢어져도 사랑은 남는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남고, 결국 다시 번영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삶이란 불치의 상태다. 모두 죽어가고 있는데,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진정으로 살아갈까? 이 질문에 정직하게 답한다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당신도 가능한 한 최고의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다. 그리고 순응이 당신의 변화를 도울 것이다.&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ᴄᴀᴛᴇɢᴏʀɪᴇs/독서</category>
      <author>윤소</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shidd.tistory.com/718</guid>
      <comments>https://yshidd.tistory.com/718#entry718comment</comments>
      <pubDate>Fri, 4 Sep 2026 10:32:26 +0900</pubDate>
    </item>
    <item>
      <title>순응</title>
      <link>https://yshidd.tistory.com/717</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누구나 순응하기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상실이고, 사랑하는 사람이나 자신의 죽음은 특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봤듯 상실의 고통을 '수락'해야 이윽고 다시 살아 있다고 느끼게 된다. 어쩌면 상실을 결코 극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결 편안하게 숨을 쉬고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애도 전문가 데이비드 캐슬러는 이렇게 표현한다. &quot;우리는 소중한 사람을 잃은 세상에서 현재를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새로운 삶을 거부할 때, 많은 사람이 처음에는 사랑하는 이가 죽기 전처럼 삶을 유지하길 바란다. 그러나 순응을 단편적으로 거치면서 결국 예전처럼 삶을 이어갈 수 없다고 깨닫는다. 삶은 영원한 편화고, 우리는 새롭게 적응해야 한다. 역할을 다시 편성하고 타인에게 새로 배정하거나, 직접 책임지는 법을 익혀야 한다.&quo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아버지는 건강 상태가 불확실해질수록 내게 순응의 힘을 알려주는 데 열중했다. 스스로 부모로서, 사업가로서, 친구로서, 남편으로서, 삶의 주체로서 충분히 잘하고 있고, 잘해왔다는 확신을 얻었다. 더는 벗어진 머리나 전체적으로 변한 외모에 당혹스러워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곧 죽는다는 사실에도 순응했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부터 아주 사소한 일마저 축하할 만큼 소중해졌기 때문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나도 잘 순응하고 있을까? 스스로 여자친구로서 마음을 다해 잘해줬던가? 나는 내가 가진것 중에서 현규오빠가 가장 빛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말해주었다. 강박증이 발동할 상황이 생길때마다 괜찮아, 화장실 찾아보자고 안심시키려고 해주었다. 내가 불편해지는 상황에 미안해할때마다 당연한거라고 괜찮다고 말해줬다. 내가 가진것들을 전부 나누었다. 그렇지만 마음에 여유가 없는 날들엔 강박증이 발동할때 나보다 더러운게 우선인것같은 속상한 마음을 쌓아두기도 했다. 또 내가 강박증 대처를 잘 못해주고 실수할때마다 현규오빠가 보이는 부정적인 감정에 '내가 실수했고 현규오빠가 지적했다'는 것에 크게 의기소침해서, 현규오빠가 들을 수 있는 상황에 들을수 있는 형태로 전할 때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갈등을 만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현규오빠를 포기했다. 그렇지만 내 조절이 닿는 한 나는 최선을 다했다. 감정을 괜찮은 순간에, 괜찮은 방법으로 분출하는 법을 몰랐고 원하는 바를 나쁘지 않게 요구할수있다는걸, 그게 장기적으로 좋다는 것을 모르는 상태였다. 그로써 나는 많이 애썼다. 내가 가진 것들을, 물질적이든 관심이든 모든 자원들을 현규오빠에게 부었다. 그리고 나를 잃지 않는 선까지 했던건 오히려 옳은 방향이었다. 약한 나로써는 모든걸 버리고 전적으로 몸을 던졌을때 더욱 깊은 파국으로 들어섰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 직전까지도, 마지막 순간이 지나고 한동안도 헤어지려는 생각은 없었다.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었다.)&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ᴄᴀᴛᴇɢᴏʀɪᴇs/독서</category>
      <author>윤소</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shidd.tistory.com/717</guid>
      <comments>https://yshidd.tistory.com/717#entry717comment</comments>
      <pubDate>Fri, 4 Sep 2026 10:18:16 +0900</pubDate>
    </item>
    <item>
      <title>수선</title>
      <link>https://yshidd.tistory.com/716</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일본의 전통 공예 중 부서진 물건을 수리하는 기법은 우리 마음에도 적용할 수 있는 유익한 교훈을 준다. 수 세기의 역사를 지닌 이 공예를 긴츠쿠로이라고 하며, 해석하면 '금빛 수선'이라는 뜻이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도자기가 부서졌을 때, 이를 버리는 대신 갈라진 틈새와 흠집마다 금박을 덧바르고, 애정을 담아 수리한다. 결과적으로 파손된 도자기는 독특하고 더 아름답게 재탄생한다. 새로운 삶, 귀중한 내력, 피할 수 없는 삶의 균열을 향한 존중과 명예로운 상징을 지닌 존재가 된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마찬가지로 우리도 한때 부서졌으나 지금은 호전된 덕분에 더 아름답다. 방치, 배신, 학대, 트라우마, 상실이나 죽음 등 우리를 상처 입힌 것이 무엇이듯, 회복하는 과정은 슬픔에서 시작된다. 슬픔을 느껴도 괜찮다는 마음가짐은 금박처럼 우리를 다시 온전하게 이어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슬픔의 열차는 역으로 들어올 때 다른 온갖 차량도 거느린다. 하나의 상실은 과거의 상실을 불러일으키고, 우리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아픔까지 일깨운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슬픔은 대단히 무섭과 심신을 소모하는 감정일 수밖에 없다. 우리의 마음을 헤집고, 그 과정에서 밀어두었던 오래된 슬픔도 자극하기 때문이다.&amp;nbsp;오래된 아픔과 새로운 절망이 맞물리면 감정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데, 우리가 자신을 보호하지 않으면 생명력이 소모되고 말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러나 고통스러운 감정에서 우리를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방법은 없다. 감정을 억누르는 행위도 고통스럽고 소모적이다. 감정을 거부하면서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를 쓰게 되는데, 차라리 그 에너지를 치유에 쓰는게 훨씬 이로울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슬픔은 상실에서 온다. 상실에 관한 목록은 너무 많아서 셀 수 없다. 우정이 끝나고, 이혼하고, 직장과 독립성을 잃는다. 상실의 형태는 다양하고, 우리는 크고 작은 상실은 전부 애도해야 한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상실에 대응하는 법 보다는 고통을 피하는 법을 배운다. 우리가 슬픔을 피하는 이유는 슬픔 자체 때문만이 아니라, 슬픔에 얽힌 모든 것, 즉 우리는 격분하게 하고 오래된 상처를 건드리며, 몹시 두려운 감정들 때문이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리고 회피는 해가 뜨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이렇게 행동하도록 설계됐다. 그러나 현실을 인정하는 순간은 어떻게든 오기 마련이다. 보통 몸에서 나타나는 구체적 징후로 그것을 깨닫는다.&amp;nbsp;이 시기에 우리의 마음은 혐오와 갈망 사이에서 요동친다. 식료품점에 가는 것 같은 평범한 일과도 몹시 버거울 수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엘리자베스 길버트는 슬픔을 매우 아름답게 표현했다. &quot;슬픔은 부단히 당신을 노린다. 당신이 취해야 할 태도는 마음을 다해 겸허하게 무릎을 꿇고, 슬픔이 만족할 때까지 당신을 쥐고 흔들도록 두는 것이다. 언젠가는 슬픔이 제 일을 다할 것이다. 그 순간이 오면 슬픔은 떠날 것이다. 그러나 고집부리고, 거부하고, 맞선다면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말 것이다.&quo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럼에도 회피는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대응 기제다. 결과적으로 슬픔은 매우, 매우 고독한 상태로 귀결된다. 고통을 피하고 싶다는 욕구가 소중한 사람들과 격리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누군가에게 이는 연인과 멀어져서 육체적이고 성적인 교류를 중단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위로의 손길에서 더 멀어지고, 자주 다양한 사람에게 적개심을 드러내거나 상처를 줄 것이고, 특히 회피하면서 동시에 슬퍼하고 있을 때 이렇게 반응하기 쉽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우리는 직장에서도 슬픔 때문에 쉽게 낙담하거나 집중하지 못할 수 있다. 직장 동료와 가벼운 잡담도 나누지 않고 사교적인 태도를 잃어버리기도 하는데, 이는 우리가 상처를 회복하는 방법 중 아는 것이라곤 부상당한 동물처럼 은둔하기밖에 없기 때문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요약하자면, 슬픔을 방치하면 예측할 수 없는 분노, 불안, 신경과민, 과도한 충동, 미루기, 그리고 폭풍 같은 감정 속에서 일시적인 안정을 주는 중독으로 변질될 것이다. 해결되지 않은 슬픔은 항상 우리 주변을 맴돌고, 우리가 과감하게 살펴보기 전까지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출처 - 책 불행 앞에 노래 부르리&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ᴄᴀᴛᴇɢᴏʀɪᴇs/독서</category>
      <author>윤소</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shidd.tistory.com/716</guid>
      <comments>https://yshidd.tistory.com/716#entry716comment</comments>
      <pubDate>Fri, 4 Sep 2026 08:34:47 +0900</pubDate>
    </item>
    <item>
      <title>보살핌과 고갈</title>
      <link>https://yshidd.tistory.com/713</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당신이 이번에 괄호 안에 적어 내려간 것들은, 사실상 REST를 읽으면서 그 자리에서 REST를 실제로 해버린 기록이에요. 그러니까 오늘 저는 이 기술을 설명하지 않을게요. 당신은 이미 했거든요. 대신 당신이 한 것을 되짚어 보여드리고, 당신이 스스로 &quot;이건 좀 더 찬찬히 생각해봐야겠다&quot;며 열어둔 채로 남긴 그 마지막 매듭에 함께 앉아보려 합니다. 그 매듭이 오늘의 핵심이라서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먼저 호흡 이야기부터. 당신이 &quot;밑도 끝도 없는 속 편한 소리 솔루션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도 나오는 거 보니 중요한 건가 보네&quot;라고 적은 그 심드렁한 괄호가 저는 좋았어요. 그 의심은 정당하거든요. 호흡하라는 말은 너무 자주, 너무 성의 없이 던져져서 거의 위로의 상투어처럼 닳아버렸죠. 그런데 이게 여기저기서 계속 튀어나오는 데는 시시하지만 실질적인 이유가 하나 있어요. 느리게, 특히 내쉬는 숨을 길게 하는 호흡은 미주신경을 통해 부교감신경계를 건드려서 &lt;u&gt;&lt;b&gt;심박을 실제로 떨어뜨립니다&lt;/b&gt;&lt;/u&gt;. 이건 기분 문제가 아니라 배선의 문제예요. 감정이 고조되면 몸이 먼저 각성하고(심장이 뛰고 호흡이 얕아지고), 그 신체 각성을 뇌가 다시 읽어서 &quot;봐, 지금 위급하잖아&quot;라며 감정을 더 키워요. 몸과 감정이 서로를 부추기는 고리죠. 느린 호흡은 이 고리에서 당신이 의식적으로 손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손잡이예요. 심장은 마음대로 못 느리게 하지만 숨은 늦출 수 있고, 숨을 늦추면 심장이 따라오고, 심장이 느려지면 뇌가 &quot;어, 생각보다 안 위급한가&quot; 하고 판단을 고쳐요. 그러니까 호흡은 감정을 없애는 마법이 아니라, 앞서 여러 번 이야기한 그 &quot;머리가 하얘지는&quot; 상태&amp;mdash;각성이 임계점을 넘어 사고와 기억이 꺼지는 그 지점&amp;mdash;로 넘어가기 직전에 브레이크를 살짝 밟는 일이에요. 반론을 완성할 머리를 되찾으려면 먼저 각성부터 낮춰야 하는 당신에게는, 이게 특히 그냥 속 편한 소리가 아니라 접속 복구의 첫 단추인 셈이죠. 시시한 게 자주 진짜예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제 당신의 집 장면.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조금 놀랐어요. 당신은 &quot;현규 오빠가 보고 싶을 때, 외로울 때, 혼자 남겨진 기분에 두려움이 몰려와 다시 만나자고 전화해서 엉엉 울고 싶을 때&quot;라고 상황을 적고, 거기에 &quot;내일도 같은 생각이면 연락해보자&quot;라고 스스로에게 말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실제로 그런 적이 없다는 게 학습되니까 감정의 지속시간이 아주 미약하게나마 짧아진 것 같다고요. 이게 얼마나 정교한 기술인지 아마 당신은 무심코 썼을 거예요. 이건 심리학에서 '충동과 행동 사이에 시간을 끼워 넣기(urge surfing에 가까운)'라고 부르는 것의 교과서적 실행이에요. &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c1c8;&quot;&gt;충동은 파도 같아서 정점까지 치솟았다가 반드시 내려와요&lt;/span&gt;. 그런데 우리는 대개 그 정점에서 행동해버리니까 파도가 저절로 꺼진다는 걸 배울 기회가 없죠. 당신은 &quot;내일&quot;이라는 유예를 걸어서 파도가 스스로 꺼지는 걸 반복해서 목격했고, 그 목격이 쌓이니까 다음 파도의 힘이 조금 빠진 거예요. 이게 바로 지난번에 당신이 &quot;백날 읽어도 안 되고 겪어야 느껴진다&quot;고 했던 그 경험학습이 실제로 일어난 현장이에요. 당신은 &quot;내 충동은 다음 날까지 안 간다&quot;는 걸 읽어서가 아니라 겪어서 알아버렸어요. 통장에 동전이 쌓였다는 게 이런 거예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런데 당신이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 것이 진짜였어요. 당신은 &quot;이 감정이 대체 무슨 감정이지?&quot;라고 물었고, &quot;보살핌받는 것에 대한 그리움&quot;이라고 이름 붙였고, &quot;나는 오늘 보살핌받지 못했나? 그렇긴 하다&quot;라고 사실을 확인했고, 그러고 나서 &quot;그렇다면 집에서 보살핌받을 수 있나?&quot;로 넘어가더니, 차를 끓여주고 명상음악을 틀어주고 더우면 선풍기를, 서늘하면 이불을, 침대가 불편하면 소파를, 옆에 읽을 책을. 내일의 나를 위해 식탁에 챙길 것을 미리 두고 입을 옷을 골라두는 데까지 갔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죠. &quot;이렇게 적고 보니 나는 현규 오빠가 그리운 게 사실 아니었다. 누군가의 보살핌이 고팠던 것 같다.&quo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저는 이 문장에서 오래 멈췄어요. 왜냐하면 이게 지난번에 우리가 이야기했던 그 전부를 당신이 스스로 해낸 장면이거든요.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애인의 부재에서 불안을 느껴 &quot;누구든&quot; 만나고 싶어진다고 했을 때, 저는 그게 진정 기능이 특정한 그 사람에게서 떨어져 나와 '누군가의 존재라는 진정제' 자체를 필요로 하는 상태라고 말했었죠. 방금 당신은 그걸 직접 확인했어요. 그리운 건 현규 오빠라는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보살핌이라는 기능이었다는 것. 그리고 여기서 당신이 한 일은 그냥 통찰에서 그친 게 아니에요. 당신은 그 기능을 스스로에게 제공했어요. 이게 DBT에서 말하는 자기 진정(self-soothing)의 거의 완벽한 형태이고, 더 깊게는 지난번에 제가 &quot;밖의 안전기지를 안으로 옮겨오는 것&quot;이라고 불렀던 바로 그 작업이에요. 보살핌을 줄 사람을 밖에서 구하는 대신, 당신이 당신의 보살피는 사람이 된 거예요. 차를 끓이는 손과 차를 받는 사람이 한 몸 안에 다 있는 거죠. 저는 이걸 당신에게 가르쳐준 적이 없어요. 당신이 REST의 빈칸을 채우다가 스스로 도달했어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한 가지만 아주 부드럽게 덧붙일게요. 이 자기 보살핌이 앞으로 어떤 날에는 잘 안 될 수도 있어요. 차를 끓여도 허전함이 안 가시고, 책을 펴도 글자가 안 들어오는 날이요. 그런 날이 오면 그게 이 기술이 실패했다는 뜻이 아니라는 걸 미리 알아두셨으면 해요. 자기 보살핌은 매번 감정을 완전히 끄는 스위치가 아니라, 감정과 &lt;u&gt;&lt;b&gt;함께 있어주는&lt;/b&gt;&lt;/u&gt; 방식에 가까워요. 어떤 날은 그저 &quot;지금 나는 보살핌이 고프구나, 그럴 만하다&quot; 하고 그 고픔 옆에 차 한 잔과 함께 앉아 있어 주는 것,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성공이에요. 완전히 사라지게 만드는 게 아니라 혼자 두지 않는 것. 이건 당신이 잘하고 있으니 무너뜨리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잘 안 되는 날에도 이 기술을 버리지 않도록 미리 심어두는 안전장치예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제 당신이 열어둔 채 남긴 그 매듭으로 갈게요. 실수했을 때의 부정적 감정. 여기서 당신은 정말 집요하게 자기를 파고들었어요. 그 집요함을 그대로 존중하면서 같이 들어가 볼게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그게 효과가 없을순 있어도 어쨌든 내가 보살피고 있다는거야)&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당신은 먼저 물었어요. 이 질책은 지능에 대한 질책인가, 죄책감인가. 다시 말해,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잘못된 '행동'을 했다고 느끼는가(죄책감), 아니면 이 정도 완성도를 뽑아내야 하는 사람인데 못했다, 그래서 '내가 잘못됐다'고 느끼는가(수치심). 이건 지난번에 우리가 이야기한 죄책감과 수치심의 구분을 당신이 자기 상황에 직접 대보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당신은 &quot;반반인가?&quot;라고 하다가, 아주 중요한 걸 발견했어요. &quot;나를 변호하려는 생각이 들까? 지금 보면 당연한데 왜 못했지? 라는 생각에 상대의 편에 서서 내가 싫은 게 더 큰 것 같다.&quo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저는 이 문장이 오늘 당신 글 전체에서 가장 날카로운 대목이라고 생각해요. &quot;지금 보면 당연한데 왜 못했지&quot;라는 그 문장. 이건 심리학에서 &lt;u&gt;&lt;b&gt;사후과잉확신편향&lt;/b&gt;&lt;/u&gt;, 흔히 후견지명 편향(hindsight bias)이라고 부르는 것의 순수한 표본이에요. 일이 벌어진 다음에는 모든 게 명백해 보여요. 결과를 아니까요. 그런데 당신은 그 '결과를 아는 지금의 시점'에서 '결과를 몰랐던 그때의 나'를 심판하고 있어요. 이건 구조적으로 공정할 수가 없는 재판이에요. 그때의 당신은 지금의 당신이 가진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았거든요. &quot;지금 보면 당연하다&quot;는 건 그때도 당연했다는 뜻이 아니에요. 그때의 당신에게는 당연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못 한 거고요. 검사인 당신은 미래에서 온 정보로 무장한 채, 그 정보가 없던 과거의 당신을 &quot;이렇게 뻔한 걸 왜 못했냐&quot;고 몰아세우는 거예요. 이건 불이 난 뒤에 재를 보면서 &quot;여기 불씨가 있었잖아, 왜 못 봤어&quot;라고 하는 것과 같아요. 불씨는 불이 나야 보이는 거예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어제는 이게 논리 이해는 되는데 공감이 안돼서 넘어갔었는데 오늘 깨끗한뇌(?)로 다시 읽으니까 이해되는듯. 내가 할수있었으면 했을것이다)&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런데 저는 여기서 당신의 정직함을 배신하고 싶지 않아요. 당신은 자기변호로 도망가지 않았거든요. 오히려 그 반대로 갔어요. 당신은 이렇게 적었죠. &quot;나는 그날 오후에 뭘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중에 여유 있을 때 그걸 발견했으면 했을 것이다. 다만 여유가 찾아오기 전에 파묘된 것뿐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나? 생각할 수 없는 것 같다...&quot; 저는 이 대목이 마음 아팠어요. 왜냐하면 당신은 자기 자신에게 무죄의 논리를 하나 만들어놓고는, 그걸 스스로 기각해버렸거든요. &quot;이렇게 생각할 수 있나? 없는 것 같다.&quo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왜 당신은 그 변론을 기각했을까요. 저는 이유를 짐작해요. 당신에게 그 변론은 너무 쉬운 봐주기처럼 느껴졌을 거예요. 당신 안에는 &quot;정당한 이유가 있어야만 봐줄 수 있다, 그냥 봐주는 건 응석이다&quot;라는 규칙이 살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quot;그날 오후엔 하기 싫었다&quot;는 건 당신에게 변론이 아니라 자백처럼 느껴졌을 거예요. 게으름의 증거요. 그런데 여기서 제가 지난번에 배운 걸 지킬게요. 당신은 읽어서는 안 움직이는 사람이니까, &quot;그래도 괜찮아&quot;라고 제가 판정해주지 않을게요. 대신 질문 몇 개만 옆에 놓아둘게요. 당신이 찬찬히 생각해보겠다고 한 그 자리에서, 이 질문들이 재료가 되면 좋겠어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첫째. &quot;그날 오후에 하기 싫었다&quot;는 것과 &quot;그날 오후에 할 수 없었다&quot;는 것은 정말로 다른 걸까요? 당신은 오전에는 &quot;그 정도의 집중력이 안 돼서 못 했다&quot;고 적었어요. 그건 능력의 한계로 인정했어요. 그런데 오후의 &quot;하기 싫었다, 내 여가시간이 더 중요했다&quot;는 인정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하루치 집중력이 이미 오전에 소진된 사람에게 오후의 &quot;하기 싫음&quot;은 정말 게으름일까요, 아니면 그것 역시 &lt;b&gt;&lt;u&gt;고갈의 다른 이름&lt;/u&gt;&lt;/b&gt;일까요? 몸과 뇌는 무한한 연료를 갖고 있지 않아요. 오전에 바닥난 집중력이 오후에 &quot;하기 싫음&quot;이라는 감각으로 나타나는 건 아주 흔한 일이에요. 당신은 오전의 한계는 봐주고 오후의 한계는 안 봐줬는데, 그 둘을 가른 기준이 정말 공정한지 한번 대보셨으면 해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둘째. 당신은 그날 오후에 여가를 택했어요. 그런데 여가시간을 갖는 게 왜 죄가 되어야 하죠? 지난번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당신은 자기 자신에게 여가와 쉼을 허락하는 근육이 유독 약한 사람인 것 같아요. 남의 일에는 열심을 다하고, 자기를 보살피는 건 어색해하고, 논리적으로 정당화되지 않는 자기 욕구는 스스로 무효 처리하는. 그날 오후의 여가는 당신이 당신에게 준 얼마 안 되는 보살핌이었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당신은 그걸 나중에 실수의 원인으로 지목해서 기소 목록에 올렸어요. 이게 반복되면 어떻게 될까요? 당신은 쉴 때마다 죄를 짓는 셈이 되고, 그러면 영영 마음 편히 쉬지 못하게 돼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셋째, 이게 가장 중요한데. 당신은 &quot;앞으로 뭔가를 바꾸면 그렇게 할 수 있나? 그렇지 않다&quot;라고 스스로 답했어요. 즉 노력으로 없앨 수 있는 실수가 아니라는 걸 당신은 이미 알고 있어요. 이건 엄청나게 중요한 인정이에요. 바꿀 수 없는 걸 두고 자기를 미워하는 건, 논리적으로도 이상한 일이거든요. 당신 스스로 &quot;이 정도 실수 빈도는 내 지능과 업무강도 수용범위를 종합했을 때 괜찮다고 생각이 들까?&quot;라고 물었죠. 이 질문에 당신은 아직 답을 안 했어요. 열어뒀어요. 그래서 제가 답을 대신 내리진 않을게요. 다만 이 질문의 형태 자체를 한번 보세요. 당신은 지금 &quot;이 실수는 용납 가능한 범위인가&quot;를 계산하려 하고 있어요. 이건 검사가 아니라 판사의 질문이에요. 검사석에서 판사석으로 옮겨 앉은 거예요. 그 이동만으로도 이미 뭔가 달라졌어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여기는 아직 잘 모르겠다...)&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리고 여기서 제가 오늘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당신이 열어둔 이 매듭, &quot;여유가 오기 전에 파묘된 것뿐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나, 없는 것 같다&quot;&amp;mdash;이 매듭을 지금 당장 풀지 않아도 돼요. 저는 당신이 이걸 열어둔 채로 남겨둔 그 행위 자체가 이미 답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예전의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quot;역시 내가 문제야&quot;로 순식간에 판결하고 닫아버렸을 거예요. 수치심은 원래 빠르고 확실하거든요. 즉결심판이에요. 그런데 이번에 당신은 판결을 유보했어요. &quot;좀 더 찬찬히 생각해봐야겠다&quot;고 했어요. 이 유보가, 이 열어둠이, 바로 검사석에서 내려오는 일이에요. 성급하게 유죄를 때리지 않고 사건을 계속 심리 중인 상태로 두는 것. 지난번에 우리가 &quot;느낌을 집행유예 상태에 두지 말고&quot;를 이야기했지만, 사실 자기 심판에서는 정반대가 필요해요. 유죄 판결을 서두르지 말고 심리를 길게 여는 것. 당신은 오늘 그걸 했어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러니까 제가 이 매듭에 대해 드리고 싶은 건 답이 아니라 이거예요. 그 매듭을 열어둔 채로, 다음에 똑같이 실수했을 때 한 번 실험을 해보세요. 그 자리에서 &quot;지금 검사인 나는 미래의 정보로 과거의 나를 심판하고 있진 않나?&quot;를 딱 한 번만 물어보는 거예요. 그리고 오전의 나에게 준 관용을 오후의 나에게도 똑같이 줄 수 있는지 대보는 거예요. 답이 안 나와도 괜찮아요. 물어본 것 자체가 검사석에서 반걸음 내려온 거니까요. 그리고 그런 순간이 몇 번 쌓이면, 언젠가 당신은 읽어서가 아니라 겪어서 알게 될 거예요. &quot;&lt;u&gt;&lt;b&gt;아, 그때 봐줬어도 세상이 안 무너졌구나.&lt;/b&gt;&lt;/u&gt; 오히려 다음 날 더 잘했구나&quot;를요. 지난번에 당신이 바랐던 그것&amp;mdash;&quot;지금 느낀 게 나중에 정당했다는 기억이 나에게 생기면&quot;&amp;mdash;이 여기서도 똑같이 작동해요. 자기를 봐준 게 나중에 옳았다는 경험이 한 번 생기면, 그때부터 봐주기는 응석이 아니라 정확한 판단이 돼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오늘 당신은 REST라는 빈 그릇을 받아서, 거기에 자기 자신을 이만큼이나 부어넣었어요. 호흡을 의심하면서도 받아들였고, 외로움의 진짜 이름을 찾아냈고, 스스로에게 차를 끓여줬고, 실수 앞에서 자기를 미워하는 그 오래된 재판의 구조를 거의 다 해부해놓고는, 마지막 판결만은 서두르지 않고 열어뒀어요. 이건 워크북을 푸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에요. 이건 자기 삶을 실제로 다르게 살기 시작한 사람의 모습이에요. 그리고 그 마지막에 당신이 남긴 &quot;이건 좀 더 찬찬히 생각해봐야겠다&quot;는 한 줄이, 저는 &quot;아니다, 난 잘 살고 싶다&quot;만큼이나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급하게 자기를 단죄하지 않겠다는 그 유보야말로, 당신이 스스로에게 건네기 시작한 가장 어려운 종류의 다정함이거든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실수 앞의 자기 심판, 특히 상대의 논리를 빌려와 자기를 기소하는 그 패턴은, 앞으로 혼자 오래 씨름하기보다 DBT를 아는 상담자와 함께 들여다보면 훨씬 덜 아프게 풀릴 부분이에요. 겁주려는 게 아니라, 이런 내부의 재판 구조는 좋은 상담이 특히 잘 도와주는 자리라서 하는 말이에요. 혹시 어느 순간 이 감정들이 혼자 감당하기 벅차게 느껴지면, 한국에서 지금 닿을 수 있는 상담이나 자원을 함께 찾아보는 것도 얼마든지 도와드릴 수 있어요. 원하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오늘도 이렇게 오래 자기 곁에 앉아 있어 준 것, 기억해 주셨으면 해요.&lt;/p&gt;</description>
      <category>ᴄᴀᴛᴇɢᴏʀɪᴇs/생각</category>
      <author>윤소</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shidd.tistory.com/713</guid>
      <comments>https://yshidd.tistory.com/713#entry713comment</comments>
      <pubDate>Thu, 3 Sep 2026 08:45:06 +0900</pubDate>
    </item>
    <item>
      <title>REST</title>
      <link>https://yshidd.tistory.com/712</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습관적인 행동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행동 변화를 위해 당신은 어떤 행동을 바꾸고 싶은지 알아야 하고, 언제 그 행동을 바꾸기를 원하는지 알아야 하며, 습관적인 행동을 어떤 다른 행동으로 대체할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lt;br&gt;&amp;nbsp;&lt;br&gt;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당신이 애초에 무언가 다르게 행동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개 가장 어려운 일이며, 특히 당신의 감정에 압도되는 기분을 느낄 때 이 사실을 기억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lt;br&gt;&amp;nbsp;&lt;br&gt;대부분의 경우 고통스러운 감정을 맞닥뜨리게 되면, 본능적으로 늘 해오던 방식대로 충동적으로 행동하거나, 습관에 따라 자기 파괴적인 대처 전략이나 문제 행동을 하게 됩니다.&amp;nbsp;&lt;br&gt;&amp;nbsp;&lt;br&gt;이렇게 되는 이유는 감정이 고조된 그 순간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며, 다르게 행동하기로 계획했던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lt;br&gt;&amp;nbsp;&lt;br&gt;그렇다면 압도적인 감정을 경험할 때 더 나은 결정을 하기 위해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문제적인 행동 또는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바꾸기 위한 그리고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기 위한 첫번째 단계가 바로 REST(이완하기, 평가하기, 계획하기, 행동하기) 전략을 사용하는 것입니다.&lt;br&gt;&amp;nbsp;&lt;br&gt;첫번째 단계는 이완하기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을 멈추십시오. 어떤 미동도 없이 그대로 멈추십시오. 호흡하고 다시 멈추십시오. 현재 상황에 대한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몇 초 동안 한 걸음 물러서십시오. 평소 하던 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말고,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사실을 자신에게 계속 상기시키십시오.&lt;br&gt;&amp;nbsp;&lt;br&gt;충동적으로 행동하려는 욕구와 당신의 실제 반응 사이에 어느 정도 &quot;공간&quot;이 생기게 하십시오. 즉각적으로, 그리고 자동적으로 반응하지 않게 하기 위해 &quot;멈춰&quot;, &quot;진정해&quot;와 같은 단어를 소리내어 말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고 나서 몇 차례 천천히 호흡하십시오. 그러면 의미있는 대안적 행동을 선택하기에 앞서 감정이 이완될 것입니다.&lt;br&gt;&amp;nbsp;&lt;br&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이거 불행 앞에서 노래 부르리에서 자주 나오던건데 호흡하기... 밑도끝도없는 속편한 소리 솔루션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도 나오는거보니 중요한건가보네...)&lt;/span&gt;&lt;br&gt;&amp;nbsp;&lt;br&gt;두번째 단계는 평가하기입니다. 지금 어떤 상황이 벌어진 건지 자문하십시오. 객관적인 사실은 무엇입니까? 오래 고민하지 말고 단순하게 평가해보십시오. 모든 부분을 전부 살펴볼 필요도 없고, 당신이 행동한 방식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를 깊게 분석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상황이 너무 복잡하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차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lt;br&gt;&amp;nbsp;&lt;br&gt;예를 들어, 지금 자신에게 신체적으로, 감정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찰하십시오.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관찰하십시오. &quot;내 기분이 어떻지?&quot;, &quot;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quot;, &quot;혹시 위험에 처한 사람은 없나?&quot;와 같은 몇 가지 간단한 질문을 던져보는 것도 좋습니다.&amp;nbsp;&lt;br&gt;&amp;nbsp;&lt;br&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집에서 감정적일때는 보통 현규오빠가 보고싶을때. 외로울때.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들고 두려움이 몰려올때. 다시 만나자고 전화해서 엉엉 울고싶을때 일어난 일을 말하고 싶을때 지금은 나는 이렇게 말한다 &quot;내일도 같은 생각이면, 연락해보자&quot; 그리고 실제로 그런 적이 없다는게 학습되니까 감정도 아주 미약하게나마 지속시간이 짧아진것같긴하다. &lt;/span&gt;&lt;br&gt;&amp;nbsp;&lt;br&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집에서 느끼는 감정은 어떤 감정일까? 보살핌받는것에 대한 그리움이다. 나는 오늘 보살핌받지 못했나? 그렇긴 하다. 그렇다면 집에서 보살핌받을수 있나? 나에게 따뜻한 차한잔을 끓여주고 편안한 명상음악 같은걸 틀어주자. 더워하는것같으면 선풍기를 틀어주고 서늘한것같으면 이불을 덮어주자. 침대가 불편하면 소파에 눕혀주자. 그리고 읽을 책들을 옆에 둬서 읽을 수 있게 해주자. &lt;/span&gt;&lt;br&gt;&amp;nbsp;&lt;br&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그리고 내일의 나를 보살피기 위해서 챙길 것들을 미리 아일랜드 식탁 위에 챙겨두자. 그리고 내일 입을 옷을 고르자. 보살핌을 내가 해주면 된다. 이렇게 적고보니 나는 현규오빠가 그리운게 사실 아니었다. 누군가의 보살핌이 고팠던것같다.&lt;/span&gt;&lt;br&gt;&amp;nbsp;&lt;br&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사람들이랑 얘기할때 내가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는 억울할 때랑 실수할때다. 다른 때도 있지만 실수할때가 제일 강하고 많으니까 우선 이것만 대처 방안을 만들어두자. 실수해서 오는 부정적 감정은 왜 생겼을까? 나 스스로 이미 질책당할만한 사유가 많다고 생각해서. 예를 들면 더 철저하게 했어야 했는데 (완성도 측면에서) 어제 오전에는 그정도의 집중력이 안돼서 못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확인하기 싫었다 내 여가시간이 더 중요했다.&amp;nbsp;&lt;/span&gt;&lt;br&gt;&amp;nbsp;&lt;br&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이 질책은 나의 지능에 대한 질책이라고 느끼는걸까 아니면 죄책감일까? 즉 감정이 좋았으면 했을텐데 못해서, 나는 원래 그런사람이 아닌데 잘못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는걸까 아니면 이정도 완성도를 끌어내야하는 사람인데 복합적으로 못했다, 복합적으로 수치스럽다는 기분일까? 즉 내가 잘못됐다고 느끼는걸까?&amp;nbsp;&lt;/span&gt;&lt;br&gt;&amp;nbsp;&lt;br&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그런 상황에서 반반인가? 나를 변호하려는 생각이 들까? 지금 보면 당연한데 왜 못했지? 라는 생각에 상대의 편에 서서 내가 싫은게 더 큰것같다.&amp;nbsp;&lt;/span&gt;&lt;br&gt;&amp;nbsp;&lt;br&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그렇다면 앞으로 뭔가를 바꾸면 그렇게 할수있나? 그렇지 않다. 그러면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가? 이정도 실수 빈도는 내 지능과 내 업무강도 수용범위를 종합해봤을때 괜찮다고 생각이 들까?&lt;/span&gt;&lt;br&gt;&amp;nbsp;&lt;br&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나는 그날 오후에 뭘 하고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중에 여유있을때 그걸 발견했으면 했을것이다. 다만 여유가 찾아오기 전에 파묘된것뿐이다. 이렇게 생각할수있나? 생각할수 없는것같다... 이건 좀더 찬찬히 생각해봐야겠다)&lt;/span&gt;&lt;br&gt;&amp;nbsp;&lt;br&gt;세번째 단계는 무언가 행동하기 위한 목적을 구체화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계획이란 당신이 하고자 하는 행동을 위한 목표, 목적, 의도 등을 말합니다.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결정하십시오. 뒤에서 배우게 될 대처 기술 중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그리고 자신에게 이렇게 질문하십시오. &quot;지금 당장 나에게 필요한 게 뭐지?&quot; 그런 뒤 곧 배우게 될 대처 기술이나 자기 진정 기술 중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혹시 더 큰 문제가 남아있습니까? 그렇다면 뒤에서 배우게 될 고급 단계의 문제 해결 기술이나 의사소통 기술을 사용하십시오. 당신이 무엇을 선택하든 그게 최종적인 것이 되거나 지금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해결책이 될 필요는 없지만, 그것이 당신이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건강한 방식이 되기를 바랍니다.&lt;br&gt;&amp;nbsp;&lt;br&gt;마지막으로, 행동하기입니다. 계획을 실행하십시오. 마인드풀한 자세로 진행하십시오. 이 말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자각하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라는 의미입니다. 이전 단계에서 선택한 목적이 무엇이었든 간에 지금 최대한 침착하고 효과적으로 그 행동을 하십시오. 다시 말하지만, 이 행동이 현재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이러한 단계들을 따른다면, 당신의 마인드풀한 행동은 당신이 충동적으로 반응했을 때 취했을 자기 파괴적인 행동에 비해 더 건강하고 효과적인 대처가 될 것입니다.&amp;nbsp;&lt;br&gt;&amp;nbsp;&lt;br&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ᴄᴀᴛᴇɢᴏʀɪᴇs/생각</category>
      <author>윤소</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shidd.tistory.com/712</guid>
      <comments>https://yshidd.tistory.com/712#entry712comment</comments>
      <pubDate>Wed, 2 Sep 2026 16:14:38 +0900</pubDate>
    </item>
    <item>
      <title>주의 분산과 자기 진정</title>
      <link>https://yshidd.tistory.com/711</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고통 감내 기술의 첫 번째 내용은 감정적인 고통을 유발하는 상황에서 &lt;u&gt;&lt;b&gt;주의를 분산&lt;/b&gt;&lt;/u&gt;시키는 방법입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주의 분산 기술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중요합니다. (1) 고통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일시적으로 멈출 수 있게 해주고, (2) 그 결과, 상황에 적절한 대처 반응을 찾을 수 있는 &lt;u&gt;&lt;b&gt;시간을 벌어줍니다&lt;/b&gt;&lt;/u&gt;. 산드라가 3일 동안 어떤 식으로 그녀의 고통을 끌어안고 있었는지 기억합니까? 그녀는 마리아와 다퉜던 기억을 끊임없이 되새겼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주의 분산은 무언가 다른 것을 생각함으로써 고통이 그저 지나가게 두는 기술입니다. 또한 주의 분산은 스트레스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하기 전에 감정을 진정시킬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기능을 합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하지만 주의 분산과 회피를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회피를 선택한다는 건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분산에는 &lt;b&gt;&lt;/b&gt;&lt;u&gt;&lt;b&gt;감정이 견딜 수 있는 수준으로 가라앉은 뒤에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도&lt;/b&gt;&lt;/u&gt;가 담겨 있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고통 감내 기술의 두 번째 내용은 &lt;u&gt;&lt;b&gt;자기 진정&lt;/b&gt;&lt;/u&gt; 기술입니다. 감정이라는 것이 때때로 지나치게 강렬해질 수 있기 때문에, 문제의 원인을 직면하기 전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진정하는 노력이 꼭 필요합니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감정에 쉽게 압도되는 사람들은 다툼이 벌어지거나, 거절당하거나, 실패하거나, 그 외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게 됐을 때 공황 상태에 빠집니다. 감정 조절 기술(7장, 8장)과 대인관계 효율성 기술(9장, 10장)을 적용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 당신의 심리적 힘을 회복하도록 돕는 자기 진정 기술을 배우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고통 감내 기술은 마치 차가 계속해서 주행할 수 있도록 기름을 채워 넣는 것과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자기 진정 기술은 당신이 고통으로부터 평안해지고 안도할 수 있도록 돕는 기능을 하며, 진정한 뒤에 다음 대책을 찾을 수 있도록 돕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외에도 자기 진정 기술에는 또 다른 목적이 있습니다. 이 기술을 통해 당신은 자신을 자애롭게 대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것입니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감정적인 문제를 다루기 힘들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어린 시절 학대를 당하거나 방치된 경험이 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자신을 돌보는 방법보다 자신을 다치게 하는 방법을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자기 진정 기술의 두 번째 목적은 자기 자신을 친절하고 사랑스럽게 대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lt;/p&gt;</description>
      <category>ᴄᴀᴛᴇɢᴏʀɪᴇs/생각</category>
      <author>윤소</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shidd.tistory.com/711</guid>
      <comments>https://yshidd.tistory.com/711#entry711comment</comments>
      <pubDate>Wed, 2 Sep 2026 15:17:40 +0900</pubDate>
    </item>
    <item>
      <title>잘 흘려보내려면</title>
      <link>https://yshidd.tistory.com/709</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당신이 적어 놓은 표시와 그 옆에 달아둔 짧은 주석들을 먼저 오래 들여다봤습니다. 워크북의 문항 자체보다도, 당신이 그 옆에 손으로 덧붙인 말들이 훨씬 더 많은 것을 말해주더군요. &quot;이유: 생각하지 않으려는 방어기제가 생겨서 구체적으로 생각은 안 하는데 감정만은 떠다니는 것 같음&quot; 같은 문장은, 사실 웬만한 상담 몇 회기를 거쳐야 겨우 언어화되는 종류의 자기 관찰입니다. 그러니 시작하기 전에 이 말부터 하고 싶어요. 당신은 지금 스스로를 대단히 정밀하게 들여다보고 있고, 그 정밀함 자체가 이 워크북이 다루려는 문제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결코 흔한 능력이 아닙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워크북은 거의 틀림없이 DBT, 즉 변증법적 행동치료 계열의 자료입니다. '자기 파괴적 대처 전략의 대가'라는 워크시트 이름과 문항 구성이 그 전통에서 나온 것이거든요. DBT를 만든 마샤 리네한(Marsha Linehan)은 어떤 사람들은 기질적으로 감정을 남들보다 더 빨리, 더 강하게 느끼고, 한번 올라온 감정이 평소 상태로 돌아오는 데 더 오래 걸린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이것을 결함이 아니라 '정서적 취약성(emotional vulnerability)'이라는 타고난 감수성으로 이해했어요. 그리고 이런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quot;그건 과해&quot; &quot;그렇게 느낄 일이 아니야&quot; 같은 식으로 자꾸 부정당하는 환경에서 자라면, 감정을 다루는 &lt;u&gt;&lt;b&gt;건강한 방법을 배우지 못한 채&lt;/b&gt;&lt;/u&gt; 극단적인 방법들로 스스로를 진정시키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워크북 첫머리에서 &quot;어떤 사람들에게는 신체적&amp;middot;감정적 고통이 더 강렬하게, 더 자주 발생한다&quot;고 쓴 그 문장에 당신이 자기 자신을 겹쳐 읽었다면, 이 치료법은 바로 당신 같은 감정의 구조를 가진 사람을 위해 설계된 것이라는 뜻이에요. 앞으로 제가 하는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전제가 그것입니다. 여기 적힌 어떤 것도 당신이 나약하거나 잘못됐다는 증거가 아니라, 강한 감정을 가진 사람이 그 감정을 혼자 감당하려다 도달하게 된 자연스러운 귀결이라는 것.&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 위에서, 제가 당신의 목록 전체에서 발견한 하나의 관통하는 패턴을 먼저 말씀드릴게요. 여기 적힌 거의 모든 전략은 사실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의 안도를 사들이는 대신, 그 대가를 미래에, 그것도 이자를 붙여서 갚는 구조예요. 자해도, 폭식과 구토도, 고립도, 강박적인 기록도, 하루의 규칙을 정해두는 것도, 방식은 전혀 달라 보이지만 전부 &quot;지금 이 &lt;b&gt;&lt;u&gt;감당 안 되는 내부의 혼란에 어떻게든 질서와 진정을 부여하려는&lt;/u&gt;&lt;/b&gt;&quot; 시도라는 점에서 형제입니다. 워크북 스스로가 마지막에 &quot;일시적으로는 안도감을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더 큰 괴로움을 유발한다&quot;고 적어둔 그 문장이 핵심이에요. 문제는 당신의 대처법이 어리석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예요.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이 눈앞의 무엇이든 붙잡는 건 지극히 합리적인 반응이죠. 급성 통증 앞에서 인간의 뇌는 언제나 '지금 당장'을 선택하도록 설계되어 있으니까요. 당신의 전략들이 위험한 건 그것들이 비합리적이어서가 아니라, 너무 잘 들어서, 그래서 시간의 지평이 짧다는 데 있습니다. 이 '시간 지평의 문제'를 붙잡고 있으면 나머지 이야기가 다 이어집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두 번째로 눈에 밟힌 실이 있어요. 당신의 목록에는 감정이 '허용되는가', 즉 내가 이렇게 느껴도 되는가를 두고 벌어지는 내부의 재판이 계속 반복됩니다. 나중에 다시 자세히 다루겠지만, 싸울 때 논리로 반박당하면 감정이 배가되는 것도, 안 좋은 일에 내 지분이 있으면 나를 미워하는 쪽으로 흐르는 것도, 워크시트의 &quot;기분이 나아질 자격이 없다&quot;는 문항에 당신이 곧바로 반발하며 &quot;자격이 없다기보다는 지금의 나에게 이게 맞는 것 같아서&quot;라고 고쳐 쓴 것도, 전부 당신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quot;너, 그렇게 느낄 자격 있어?&quot;라고 묻고 있다는 신호처럼 보였습니다. DBT의 심장부에 있는 처방이 바로 이 지점을 겨냥해요. 감정은 &lt;u&gt;&lt;b&gt;논리적으로 정당해야만 느껴도 되는 게 아니다&lt;/b&gt;&lt;/u&gt;. 감정은 옳고 그름을 다투는 주장이 아니라, 그저 정보다. 이 한 문장이 당신에게 스며들면 목록의 절반이 힘을 잃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세 번째 실은 '전부 아니면 전무'의 스위치입니다. 규칙 안에 있으면 평화롭지만 어떤 이유로든 규칙에서 벗어나 버리면 그날 하루를 통째로 망가뜨린다고 하셨죠. 절식하다가 무너지면 폭식으로 가고, 감정을 완전히 억누르다가 결국 터뜨려 자해로 가고. 이 모든 게 같은 스위치예요. 중간이 없습니다. 조금 어긋난 것이 곧 전부 어긋난 것이 되어버리는 이 이분법이, 사실 당신이 치르는 대가를 몇 배로 증폭시키는 진짜 배후입니다. 이것만 무뎌져도 삶의 손상이 극적으로 줄어들 겁니다. 뒤에서 다시 오겠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제 당신이 가장 무겁게 느낀 것들 안으로 들어가 볼게요. 자해에 대해 당신이 적은 문장이 저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quot;육체적 고통은 오히려 쾌감 아닌가? 터져 나오는 감정이 한순간에 물을 끼얹은 듯 사그라들면서 시원하기까지 한데.&quot; 저는 이 말을 부정하거나 축소하지 않으려 합니다. 왜냐하면 그건 사실이고, 당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거든요. 자해가 감정을 진정시키는 이 효과는 임상 연구에서 가장 일관되게 확인된 현상입니다. 데이비드 클론스키(David Klonsky) 같은 연구자들이 자해의 기능을 조사했을 때, 압도적으로 지지받은 것이 바로 '정서 조절' 기능이었어요. 견딜 수 없는 내면의 감정이 순식간에 경계가 분명한 외부의 통증으로 치환되고, 주의가 그리로 쏠리면서, 통제 불가능하던 것이 갑자기 통제 가능한 무엇이 되죠. 급성 통증이 유발하는 내인성 진통 물질까지 더해지면, 당신 말대로 정말로 '물을 끼얹은 듯' 감정이 꺼지고 시원해집니다. 그러니 이건 당신 머릿속의 착각이 아니라, 실재하는 생리적&amp;middot;심리적 안도예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런데 바로 그 점이 이 방법을 위험하게 만듭니다. 효과가 확실하기 때문에 자꾸 그리로 가게 되고, 자꾸 가면 같은 안도를 얻는 데 필요한 강도가 조금씩 올라가고, 무엇보다 이 방법이 너무 잘 들어서 정작 그 밑에 있던 감정은 한 번도 소화되지 못한 채 그대로 남습니다. 그래서 압도되는 빈도 자체는 줄어들지 않아요. 급한 불은 꺼지지만 불씨는 그대로여서, 다음 불이 또 오죠. 당신이 &quot;수치심은 안 느껴본 것 같다&quot;고 쓴 대목도 저는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습니다. 보통 수치심은 이 행동을 줄이는 브레이크로 작동하는데, 당신에게는 안도만 있고 브레이크가 없다면, 그건 이 방법이 당신에게 더 안전하다는 뜻이 아니라 더 끈끈하게 붙어 있다는 뜻이거든요. 저는 당신을 겁주려는 게 아니라, 목록의 여러 항목 중에서 이것만큼은 당신이 혼자 붙들고 있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말을 합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흔히 권해지는 얼음 쥐기나 고무줄 튕기기 같은 '아프지만 덜 위험한 대체 통증' 방법을, 저는 당신에게 권하지 않겠습니다. 그건 결국 고통으로 고통을 다스리는 같은 회로를 강화하는 것이라, 방향이 반대예요. 진짜 대안은 통증을 갈아 끼우는 게 아니라, 감정이 그 정점까지 치솟기 전에 &lt;b&gt;&lt;u&gt;새어 나갈 밸브&lt;/u&gt;&lt;/b&gt;를 만들고, 감정을 파괴가 아닌 &lt;u&gt;&lt;b&gt;다른 방식으로 대사&lt;/b&gt;&lt;/u&gt;(代謝)시키는 쪽에 있습니다. 그건 혼자보다 함께할 사람이 있을 때 훨씬 잘 되는 종류의 작업이고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폭식&amp;middot;절식&amp;middot;구토에 대해 당신이 덧붙인 관찰도 사실 같은 구조를 정확히 짚고 있습니다. &quot;불안이 밀려오면 먹고 싶지도 않은 것들을 자꾸 주워 먹고, 속이 안 좋으면 불안이 마구 올라와서 토를 하면 그게 사라진다.&quot; 그리고 당혹감&amp;middot;수치심&amp;middot;우울감의 정체를 &quot;내가 통제력을 잃은 데서 오는 허탈한 느낌&quot;이라고 하셨죠. 이건 자해와 완전히 같은 문법입니다. 불안이라는 견딜 수 없는 내부 상태를 신체적 행위로 치환해 순간적으로 리셋하는 것, 그리고 &lt;u&gt;&lt;b&gt;폭식이라는 '통제 상실' 뒤에 구토라는 '통제 재장악'으로 균형을 되찾으려는 시소 운동&lt;/b&gt;&lt;/u&gt;. 먹고 싶지도 않은데 먹는다는 그 감각이 특히 중요한 단서예요. 그건 배고픔이 아니라, 불안이 손을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이 부분은 제가 어떤 구체적인 식사 방식이나 수치, 목표 같은 걸 제안하지 않을게요. 그런 조언은 이 회로에서는 도움보다 자극이 되기 쉽거든요. 다만 이 시소가 뒤에서 이야기할 '규칙을 어기면 하루를 통째로 망가뜨린다'는 패턴과 정확히 같은 엔진으로 돌아간다는 것만 지금 기억해 두세요. 절식이라는 규칙 &amp;rarr; 무너짐 &amp;rarr; 폭식 &amp;rarr; 통제 회복을 위한 구토. 규칙 &amp;rarr; 위반 &amp;rarr; 전부 방출. 완전히 같은 순환입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제 당신이 이번에 가장 힘줘서 적은, 바꾸고 싶은 세 가지로 들어갈게요. 이게 사실상 이 글의 심장입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첫 번째로 적은 것이 저는 가장 인상 깊었어요. 싸울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을 상대가 논리적으로 반박하면, 원래 감정에 '반박당함'이 더해져 감정이 더 커지고, 안 좋은 대화 태도를 보이고 싶지는 않아서 분출하지 못하고 안으로 누르다가, 결국 터져서 자해로 이어진다는 것. 이 문장 안에는 심리학이 오래 연구해 온 여러 개의 진실이 한꺼번에 들어 있습니다. 먼저 감정에는 층이 있어요. DBT는 이걸 &lt;u&gt;&lt;b&gt;'1차 감정'과 '2차 감정'&lt;/b&gt;&lt;/u&gt;으로 나눕니다. 어떤 일에 대해 처음 올라오는 서운함이나 화가 1차 감정이라면, 그 감정이 논리로 반박당했을 때 생기는 &quot;내 느낌이 부정당했다&quot; &quot;나는 이해받지 못했다&quot; &quot;이렇게 느끼는 내가 틀린 사람이 된 것 같다&quot;는 그 두 번째 층이 2차 감정이에요. 그리고 아주 자주, 이 2차 감정이 1차보다 훨씬 큽니다. 당신이 &quot;원래 감정 + 반박당함이 가중되어 감정이 더 커진다&quot;고 쓴 게 바로 이거예요. 사람은 자기 감정을 반박당하면, 논리 대결에서 진 것으로 느끼는 게 아니라 자기 존재가 부정당한 것으로 느낍니다. 특히 감정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 그리고 살면서 &quot;네 감정은 과하다&quot;는 메시지를 받아온 사람에게는, 논리적 반박이 아주 오래된 멍을 정확히 누르는 일이 되죠. 그래서 감정이 배가되는 건 당신이 미성숙해서가 아니라, 그 상황이 원래 그런 상처를 건드리게 되어 있는 구조라서입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나는 자기 존재가 부정당한 것으로 느꼈나? 그럴수도있겠다. 어떤 느낌인지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다른게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quot;네 감정은 과하다&quot;는 메세지를 어릴때 받았나 생각해봤는데 엄마가 네 감정은 과하다 예민하다 이렇게 누르고 중학생때 내가 &quot;지금은 내가 어려서 그렇다고 하니까 말을 못하고 있지만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도 부당하다고 느껴지면 꼭 말할거다&quot;라고 했을때 엄마가 &quot;그래 근데 내가 그때가서 기억할려나 모르겠다~&quot;는 식으로 무시하듯이 말했는데 그게 엄청 상처가 되었음. 또한 내가 원하는것들은 엄마가 원하지 않으면 자신의 이유를 대서 하지말라고 하고 엄마가 원하면 자신의 이유를 대서 하라고 했음 예를 들어 입고싶은 옷이 있으면 예뻐보이지 않으면 &quot;추워서 입지 마라&quot; 자기 눈에 이쁘면 &quot;춥지만 이러이러하니까 괜찮으니 입자&quot;라고 하는 등... 그런 것들에 하나하나 반박하지 못했던게 쌓였던것같기도 하다)&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여기서 정말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요. 감정은 논리적으로 옳아야만 정당한 게 아닙니다. 상대의 논리적 지적이 맞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동시에 당신의 감정도 완전히 진짜이고 정당할 수 있습니다. 이 둘은 모순되지 않아요. 이게 이 치료법의 이름에 붙은 '변증법적'이라는 말의 뜻이에요. 겉보기에 대립하는 두 진실이 함께 참일 수 있다는 것. &quot;네 지적은 논리적으로 옳아. 그리고 나는 여전히 서운해.&quot; 이 두 문장은 얼마든지 동시에 참일 수 있습니다. 감정은 반박해서 이기고 지는 명제가 아니라, 날씨 같은 정보예요. 비가 오는데 &quot;비가 오는 건 비논리적이야&quot;라고 반박할 수 없듯이, 당신의 서운함도 반박의 대상이 아니라 그냥 거기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다음에 논리로 반박당해 감정이 커질 때, 속으로 이렇게 스스로에게 먼저 말해줄 수 있어요. &quot;저 사람 말이 맞을 수도 있어. 그런데 내가 이렇게 느끼는 것도 진짜야. 이 느낌은 증명하지 않아도 돼.&quo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근데 난 서운한게 아니라 네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말이나 대화 태도가 안좋다는 말에서 부정적 감정이 쌓이는것같은데... 상대의 논리 흐름에 따르면 맞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렇게 해석된 이유는 뭔지 그런게 생각들어야 반박을 할텐데 이미 감정이 쌓인 상태라 머리가 돌지 않아서 그냥 감정으로 넘어감 악순환같음)(그리고 &quot;저 사람 말이 맞을 수도 있어. 그런데 내가 이렇게 느끼는 것도 진짜야. 이 느낌은 증명하지 않아도 돼&quot;는 감정을 가라앉히는데 도움이 별로 안될것같은데... 왜 나에겐 도움이 안될까?)&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다음이 억누름의 문제입니다. 당신은 안 좋은 대화 태도를 보이고 싶지 않아서 감정을 안으로 누른다고 했어요. 저는 이 마음이 정말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파도 상대를 함부로 대하고 싶지 않다는 건, 고통 속에서도 상대를 배려하는 성숙한 태도예요. 그런데 감정 연구, 특히 제임스 그로스(James Gross)의 정서 조절 연구가 반복해서 보여준 것이 하나 있어요. '표현 억제(expressive suppression)', 즉 감정을 겉으로 안 드러나게 눌러 담는 것은 안에서 느껴지는 감정 자체를 줄여주지 못한다는 겁니다. 오히려 생리적 각성은 더 올라가고, 감정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압력으로 축적됩니다. 그러니 당신이 겪는 순서, 즉 누르고 &amp;rarr; 누르고 &amp;rarr; 결국 터져서 자해로 가는 그 경로는,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억누름이라는 방식 자체의 물리학입니다. 댐은 물을 없애지 못해요. 잠시 막아둘 뿐이고, 막아둔 만큼 더 세게 터지죠.&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렇다면 당신이 지금 갇혀 있는 건 사실 잘못된 이지선다예요. '나쁜 태도로 분출한다' 아니면 '완전히 억누른다'. 그런데 진짜 출구는 그 사이에 있는 세 번째 길입니다. 감정을 자기 자신에게는 온전히 인정해 주되(속으로 &quot;나 지금 정말 화나고 서운해, 그럴 만해&quot;라고 타당화해 주되), 그 감정을 무기로 쓰지 않는 것. 그리고 감정을 '증명해야 할 주장'이 아니라 '정보'로 전달하는 것. &quot;네가 틀렸어&quot;가 아니라 &quot;나는 지금 이렇게 느껴&quot;라고요. 이건 논리 대결이 아니라서 반박당할 수가 없어요. 더 중요하게는, 감정이 자해까지 치닫기 전에 대화에서 잠깐 빠져나오는 것 자체가 훌륭한 기술입니다. &quot;나 지금은 차분하게 이야기하기가 어려워. 조금 있다가 다시 이야기하고 싶어.&quot; 이건 억누름도 아니고 폭발도 아닌, 딱 중간의 길이에요. 도망이 아니라, 댐이 터지기 전에 수문을 여는 겁니다. 당신이 두려워하는 '나쁜 대화 태도'를 피하면서도, 안으로만 눌러 결국 터지는 그 경로를 끊는 유일한 방법이 이 잠깐의 멈춤이에요. 당신은 이미 출구를 막는 데는 성공하고 있어요. 이제 필요한 건 막기만 하는 게 아니라, 감정이 안전하게 흘러나갈 밸브를 하나 만드는 일입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근데 나는 논리적으로 타당하면 감정이 어느정도 가라앉거든? 내가 감정이 그대로인건 뭔말인지는 알겠는데 나에게도 반박할 건수가 있는것같은데 그게 생각은 안나는 그런상황일때인거같아 아닐수도있음)&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두 번째로 적으신 것, 사회생활에서 억울한 일이 생겼을 때 감정이 흔들린 채로 말하게 되고, 그러면 논리력도 떨어지고 불필요한 말까지 하게 된다는 것. 이건 사실 당신의 결함이 아니라 인간 뇌의 기본 사양입니다. 감정적 각성이 높아지면 전전두엽, 즉 논리와 언어와 판단을 담당하는 부위의 기능이 실제로 저하됩니다. 신경과학자 에이미 안스텐(Amy Arnsten)의 연구가 보여주듯,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이성적 사고를 담당하는 회로가 오프라인이 되다시피 해요. 흔히 '감정에 납치당했다(amygdala hijack)'고 표현하는 그 상태죠. 그러니까 &quot;감정이 흔들리면 논리력이 떨어진다&quot;는 당신의 관찰은 정확한 자기 진단이면서, 동시에 당신을 탓할 일이 전혀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불이 난 건물 안에서 계약서 작은 글씨를 정확히 읽으라고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과 같아요. 그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조건의 문제입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래서 여기서 길러야 할 기술은 &quot;흔들리면서도 더 논리적으로 말하기&quot;가 아니에요. 그건 불가능한 요구입니다. 진짜 기술은 &quot;지금 내가 흔들리고 있구나&quot;를 알아차리고, 흔들리는 상태에서 정밀함을 발휘하려는 시도 자체를 잠시 접는 것이에요. DBT는 이걸 '감정 마음'과 '지혜로운 마음'의 구분으로 이야기합니다. 감정이 운전대를 잡고 있을 때 내린 결정과 말은, 물결이 잔잔해진 뒤에 보면 대개 필요 이상이거든요. 당신도 이미 &quot;불필요하다&quot;고 느꼈잖아요. 그 감각이 정확합니다. 그러니 억울한 일 앞에서 당신이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시간을 버는 문장이에요. &quot;지금 바로 답하기보다 좀 정리해서 말씀드릴게요&quot; &quot;생각해보고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quot; 같은 &lt;u&gt;&lt;b&gt;짧은 유예&lt;/b&gt;&lt;/u&gt;. 이건 지는 게 아니라, 물결이 잦아든 뒤에 당신의 온전한 논리력이 돌아왔을 때 대응하겠다는 전략적 선택입니다. 억울함은 대체로 급히 반박하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아요. 그러니 서두를 이유가 없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즉 억울할때 바로 내 입장도 표명하면서 아무도 불쾌하지 않은 문장을 탁 하고 뱉지 못했던게 속상했던건데, 왜냐면 나중이 되면 아무에게도 말할수없고 그때만 유효했을 말이니까? 근데 그냥저냥으로 넘어간 뒤에 나중에 이렇게 말하고싶다는게 정해지면 후일담처럼 가볍게 말하거나, 아니면 말하지 못했더라도 내가 나인 모습을 계속 보여주면 다른 사람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대수롭지 않을 만한 일이면 뭔가 이상하네?라고 생각해줄것이다. 그렇지 못하게 자꾸 나를 모는 집단이면 그 집단이 이상한거고)&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세 번째, 안 좋은 일이 있고 거기에 내 비중이 있으면 나를 미워하는 쪽으로 흘러간다는 것. 이건 아마 당신 목록 전체를 밑에서 떠받치고 있는 뿌리 중 하나일 거예요. 여기서 심리학이 오래 붙들어 온 아주 중요한 구분이 있습니다. 죄책감(guilt)과 수치심(shame)의 차이예요. 준 탱니(June Tangney) 같은 연구자들, 그리고 브레네 브라운(Bren&amp;eacute; Brown)이 대중적으로 정리한 이 구분에 따르면, 죄책감은 &quot;내가 나쁜 일을 했다&quot;이고 수치심은 &quot;내가 나쁜 사람이다&quot;입니다. 죄책감은 건강한 감정이에요. 행동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사과하고 고치고 회복하도록 이끕니다. 그런데 수치심은 존재 전체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고칠 방향을 주는 게 아니라 숨거나 스스로를 처벌하게 만들어요. 당신이 묘사한 흐름, 안 좋은 일에 내 지분이 있으면 &quot;내가 미워지는&quot; 그 이동은, 정확히 죄책감이 수치심으로 번역되는 순간입니다. &quot;내가 이 부분을 잘못했다&quot;라는 다룰 수 있는 사실이, &quot;그러니까 &lt;u&gt;&lt;b&gt;나는 미워할 만한 사람이다&lt;/b&gt;&lt;/u&gt;&quot;라는 다룰 수 없는 판결로 미끄러지는 거죠.&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게 왜 중요하냐면, 이 수치심으로의 번역이 당신의 자해와 직접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미워하게 되면 자기를 벌하고 싶어지고, &lt;u&gt;&lt;b&gt;자기 처벌의 통로가 바로 자해&lt;/b&gt;&lt;/u&gt;거든요. 그러니 이 세 번째 항목은 사실 첫 번째 항목의 상류(上流)에 있어요. 여기를 다루면 자해로 가는 물길 하나가 마릅니다. 그리고 이 지점의 해독제는 자기 자신을 봐주는 것, 즉 자기연민(self-compassion)입니다. 크리스틴 네프(Kristin Neff)의 연구가 반복해서 보여준 반직관적인 사실이 있어요. 자기를 혹독하게 채찍질하는 사람이 더 나아지는 게 아니라, 자기를 연민할 줄 아는 사람이 더 잘 변한다는 겁니다. 자기비판은 수치심을 낳고 수치심은 회피와 자기처벌을 낳아서 오히려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만들지만, 자기연민은 &lt;u&gt;&lt;b&gt;안전감을 줘서&lt;/b&gt;&lt;/u&gt; 실수를 정직하게 마주하고 고칠 여유를 만들거든요. 자기연민은 &quot;내 잘못을 없던 걸로 하자&quot;가 아니에요. 그건 오히려 &quot;내가 이 부분에서 잘못했어. 그건 사실이야. 그리고 나는 여전히 미워할 대상이 아니라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quot;라고, 행동과 존재를 분리해내는 일입니다. 실수한 친구에게 당신이 건넬 말을 자기 자신에게도 건네는 것. 당신은 남의 일에는 열심을 다한다고 스스로 적었죠. 그 다정함의 반경 안에 자기 자신을 포함시키는 것이 여기서의 핵심 작업입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제 당신이 앞서 스스로 덧붙였던 관찰들도 함께 짚을게요. 함께 봐달라고 하셨으니까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고립에 대한 당신의 반론이 저는 참 좋았습니다. &quot;나는 예외인 게, 나는 사유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충동적인 게 아니라 몸이 보내는 신호라고 생각한다. 회사를 가니까 강제로 사람을 만나서 고립보다는 단절에 가까운 것 같다.&quot; 이건 워크시트의 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경험에 맞게 다시 재는, 아주 건강한 정신의 움직임이에요. 그리고 저는 이 반론에 상당 부분 동의합니다. 모든 물러남이 회피는 아니에요. 강한 감정을 가진 사람에게 혼자 사유하는 시간은 실제로 필요한 회복이고, 그걸 충동적 도피와 같은 것으로 뭉뚱그리면 오히려 자신에게 부당한 일이죠. '고립'과 '단절'을 구분한 당신의 감각도 예리하고요. 다만 여기에 아주 조심스럽게 변증법 하나만 얹어볼게요. 이 재해석은 참이면서, 동시에 회피가 몰래 드나드는 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두 가지가 함께 참일 수 있어요. 회복을 위한 고독과 우울을 깊게 하는 물러남은 밖에서 보면 완전히 똑같이 생겼거든요. 둘을 가르는 건 겉모습이 아니라 방향, 즉 그 시간 뒤의 궤적입니다. &lt;u&gt;&lt;b&gt;물러난 뒤에 조금 더 가라앉고 정돈되어 다시 세상으로 나갈 힘이 생긴다면 그건 회복의 고독이고, 물러남이 자꾸 길어지고 저기압이 더 깊어진다면 그건 이름만 사유일 뿐 회피에 가까워요.&lt;/b&gt;&lt;/u&gt; 당신이 &quot;체감될 때마다 기분이 다운되긴 한다&quot;고 덧붙인 그 한 줄이, 어쩌면 이 둘의 경계선을 스스로 이미 느끼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이건 &quot;너의 해석은 틀렸어&quot;가 아니라, &quot;네 해석은 대체로 맞고, 다만 가끔 스스로 궤적을 확인해봐&quot;에 가깝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애인의 부재에서 불안을 느껴 누구든 만나고 싶은 충동이 든다는 것. 이건 애착과 정서 공동조절(co-regulation)의 이야기예요. 사람이 곁에 있는 안정된 관계에서 자기 감정을 함께 가라앉히는 건 지극히 인간적인 일이고, 그 자체로 나쁜 게 전혀 아닙니다. 다만 &quot;누구든&quot; 만나고 싶다는 그 부분이 눈여겨볼 지점이에요. 그건 진정 기능이 특정한 그 사람에게서 떨어져 나와, '누군가의 존재라는 진정제' 자체를 필요로 하는 상태가 됐다는 뜻이거든요. 사람이 대체 가능해지는 순간이죠. 이걸 알아차리는 게 중요한 이유는, 이 충동이 앞선 목록의 '위험한 관계나 성행동' 쪽으로, 혹은 관계를 약처럼 쓰는 쪽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길목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의 과제는 관계를 끊는 게 아니라, 혼자 있는 그 불안을 조금은 스스로 견디고 달랠 수 있는 능력을 함께 키우는 거예요. 그래야 곁에 있는 사람이 '없으면 무너지는 진정제'가 아니라 '내가 선택해서 함께하는 사람'이 됩니다. &lt;u&gt;&lt;b&gt;붙잡는 관계가 아니라 고르는 관계&lt;/b&gt;&lt;/u&gt;로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근데 나는 이제껏 모든 연애를 붙잡는 관계로 해왔던것같음 태완 오빠를 처음 만났을때도 팔을 너무 꽉 잡고 걸어서 안불편하냐고 물어봤었다 그리고 힘들고 슬플때마다 울고나서 울었다고 말할수있었고 누군가를 껴안고 울고싶을때마다 가서 울었었다 솔직히 말하면 안전한 누군가를 안고 울고싶었던것이지 그 오빠를 의지하고 그 사람이어서 사랑했냐고 하면 모르겠다. 애초에 사랑도 아니고 필요에의한 집착 정도였던것같다 안전하다는 감각이랑 내가 생각했을때 옳아보이는 결정을 내려주는 사람으로써)&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최적의 규칙을 정해두고 그 안에선 평화롭다가, 벗어나면 이성을 잃고 그날 하루를 통째로 망가뜨린다는 것. 저는 이게 당신 목록에서 가장 손볼 만한 가치가 크고, 가장 큰 지렛대가 되는 항목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이 패턴은 모든 작은 실수의 피해를 몇 배로 곱해버리거든요. 이건 중독 재발 연구에서 '금욕 위반 효과(abstinence violation effect)'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심리예요. 한 번 규칙을 어기면 &quot;이미 망쳤으니 끝까지 가버리자&quot;로 미끄러지는 것. 다이어트하다 과자 하나 먹고는 &quot;오늘은 글렀으니 다 먹자&quot;로 가는 그 마음과 정확히 같습니다. 여기엔 하나의 잘못된 전제가 깔려 있어요. 하루가 합격/불합격 시험이라는 전제죠. 그런데 하루는 시험이 아니라 이어지는 흐름이에요. 규칙을 어긴 건 하나의 데이터 포인트지 판결이 아닙니다. 여기서 기를 기술은 '수리하고 계속하기'예요. 오전에 규칙을 어겼어도 오후는 여전히 새것이고, 한 번의 이탈이 그날 전체를 오염시킬 권한은 없다는 걸 몸으로 배우는 것. 이 하나의 이분법만 무뎌져도, 폭식-구토 순환도, 감정 억누름-폭발 순환도 함께 느슨해집니다. 전부 같은 스위치니까요. 그리고 역설적이지만, 규칙을 조금 덜 완벽하게, 조금 더 헐겁게 지킬 줄 알게 되면 오히려 규칙을 더 오래 지킬 수 있게 됩니다. 완벽주의는 규칙의 친구처럼 보이지만 실은 규칙을 자주 폭파시키는 배신자예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마지막으로 강박적인 기록. 거의 모든 이벤트마다 사진을 찍고, 하루에 일기를 네다섯 번, 많은 날은 여덟아홉 편씩 쓴다는 것. 저는 이걸 어떤 진단명으로 부르지 않을 거예요. 그건 제 자리가 아니고, 그렇게 이름 붙이는 게 당신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습니다. 대신 이 행위가 당신에게 무엇을 해주고 있는지를 함께 궁금해하고 싶어요. 기록에는 여러 기능이 있을 수 있습니다. 흘러가버리는 경험과 자기 자신을 잃을 것 같은 두려움에 대한 붙잡음일 수도 있고, 내 경험이 그냥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 새겨져 목격되기를 바라는 마음일 수도 있고, 혼란스러운 내면을 밖으로 꺼내 글이라는 그릇에 담아 통제 가능하게 만드는 방식일 수도 있어요. 흥미로운 건, 일기 쓰기는 원래 심리적으로 아주 이로운 도구라는 겁니다. 그런데 하루에 여덟아홉 번이라면, 도구가 어느새 목줄이 됐을 가능성을 살펴볼 만해요. 당신이 기록을 쓰는 게 아니라 기록이 당신을 쓰는 상태 말이에요. 그걸 가르는 아주 단순한 시험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 일기를 안 쓰거나 사진을 안 찍으면 불안해지나요? 만약 안 쓰는 것이 불안을 부른다면, 그건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의식(儀式)에 가까워요. 즉 이것도 결국 정서 조절 장치입니다. 그렇다면 물어볼 진짜 질문은 &quot;기록을 어떻게 줄일까&quot;가 아니라 &quot;기록이 지금 어떤 불안을 대신 막아주고 있는가&quot;예요. 그 밑에 있는 두려움을 알아차리면, 기록은 강박이 아니라 다시 당신의 편안한 도구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흘러가버리는 경험과 자기 자신을 잃을 것 같은 두려움에 대한 붙잡음일 수도 있고, 내 경험이 그냥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 새겨져 목격되기를 바라는 마음일 수도 있고, 혼란스러운 내면을 밖으로 꺼내 글이라는 그릇에 담아 통제 가능하게 만드는 방식일 수도 있어요 &amp;lt;&amp;lt; 이거 전부인것같은데... 그리고 그제야 숨쉬는 느낌? 나를 쉬지않고 내 현상황을 관찰해야 안정되는느낌에 가깝다. 그래서 거울도 가능하면 일과중에 계속 보고 내 모습이 어떤지도 수시로 사진을 찍는다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근데 거울을 계속 보고 확인하고 안심하는건 대학교 들어가서부터 계속 그랬던것같다 나는 화장실이 제일 편했다 아무도 없고, 거울도 있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르니까)&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렇게 목록 전체를 한 바퀴 돌고 나면, 저는 당신에게서 문제 목록보다 훨씬 선명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당신은 자기 내면을 이 정도 해상도로 관찰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건 흔치 않습니다. 당신은 자해가 주는 안도를, 폭식과 구토가 주는 허탈함을,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조차 인정하지 못하는 것들을 정직하게 적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 정직함은 회복의 재료 중 가장 귀한 것이에요. 당신은 워크북이 던져주는 틀을 그대로 삼키지 않고 &quot;이건 나에게 맞지 않는 것 같다&quot;며 되짚어 고쳐 쓸 줄 아는 사람이고, 그건 자아가 무너지지 않고 온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quot;절망에 굴복한다&quot;는 문항 옆에 당신은 이렇게 적었죠. &quot;아니다. 난 잘 살고 싶다.&quot; 저는 이 한 줄을 당신 글 전체에서 가장 오래 기억할 것 같아요. 이 모든 무거운 목록을 적어 내려가는 사람의 손끝에 그 문장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요. 아파하면서도 상대에게 나쁜 태도를 보이고 싶지 않아 하는 그 배려, 남의 일에 열심을 다하는 그 다정함, 이 워크북을 붙들고 앉아 자기를 바꾸려는 그 의지. 이건 이미 잘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의 마음이고, 그 마음은 지금 실제로 움직이고 있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한 가지만 부드럽게 덧붙이고 마칠게요. 이 워크북은 원래 혼자 완성하도록 설계된 물건이 아닙니다. DBT는 함께 걷는 사람, 특히 훈련받은 치료자와 나란히 갈 때 가장 잘 작동해요. 그리고 여기 적힌 것들, 특히 자해와 폭식&amp;middot;구토는 당신 혼자 붙들고 있기에는 너무 무겁고, 사실 혼자 감당하라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건 당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원래 이런 종류의 감정은 곁에 사람이 있을 때 훨씬 잘 다뤄지기 때문이에요. 지금 당장 위급한 상태로 보이지는 않고, 무엇보다 당신 스스로 잘 살고 싶다고 분명히 말했으니 저는 겁주려는 게 전혀 아닙니다. 다만 이 작업을 함께해 줄 사람, 특히 DBT를 아는 상담자가 곁에 있으면 당신이 지금 혼자 해내고 있는 이 모든 정직한 관찰이 훨씬 더 빠르고 덜 아프게 변화로 이어질 거라는 걸 말해두고 싶었어요. 이건 무겁고 예민한 주제라, 만약 어느 순간 이 감정들이 혼자 감당하기 버겁게 느껴진다면, 한국에서 지금 닿을 수 있는 구체적인 도움과 자원을 함께 찾아보는 것도 얼마든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원하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리고 오늘 이렇게 자기 자신을 깊이 들여다본 것, 그 자체가 이미 목록의 어떤 항목과도 다른 방향으로 내디딘 한 걸음이라는 걸 기억하셨으면 합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r contenteditable=&quot;false&quot; data-ke-type=&quot;horizontalRule&quot; data-ke-style=&quot;style4&quot; /&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당신이 이번에 괄호 안에 적어 내려간 반응들을 하나하나 오래 읽었습니다. 그리고 먼저 이 말을 하고 싶어요. 당신은 제가 앞에서 내놓은 해석을 그냥 받아 삼키지 않고, &quot;그건 맞는 것 같아&quot; &quot;근데 이건 나한텐 안 맞는 것 같은데?&quot; &quot;왜 나에겐 도움이 안 될까?&quot; 하고 되물었습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 움직임인지 아마 당신은 잘 모를 거예요. 왜냐하면 지금부터 제가 하려는 이야기의 한가운데에, 바로 &quot;남이 준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내 것과 대조해 보는 힘&quot;이 있거든요. 당신은 방금 그걸 저에게 했어요. 그러니 오늘은 지난번 이야기를 반복하지 않고, 당신이 되물은 지점들을 따라 더 깊이 들어가면서, 제가 지난번에 살짝 빗나갔던 부분은 고쳐 잡으려 합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가장 먼저, 어머니 이야기부터 가야 할 것 같아요. 이게 나머지 전부를 다시 읽게 만드는 열쇠라서요. 당신이 적은 장면들은 리네한이 '비수인적 환경(invalidating environment)'이라고 부른 것의 거의 교과서적인 예시입니다. &quot;너는 감정이 과하다, 예민하다&quot;는 말로 감정을 눌렀던 것, 중학생인 당신이 &quot;지금은 어리다니까 참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부당하면 꼭 말하겠다&quot;고 했을 때 &quot;그때 가서 내가 기억이나 할까~&quot; 하고 흘려버린 것, 그리고 무엇보다 옷 이야기. 당신이 입고 싶은데 엄마 눈에 안 예쁘면 &quot;추우니까 입지 마라&quot;, 엄마 눈에 예쁘면 &quot;춥지만 이러이러하니 괜찮으니 입자&quot;. 저는 이 옷 이야기가 결정적이라고 생각해요. 여기서 아이가 배우는 규칙이 딱 하나 있거든요.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고, &lt;u&gt;&lt;b&gt;'이유'는 그 결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나중에 붙는 장식이라는 것&lt;/b&gt;&lt;/u&gt;. 그리고 그 게임에서 이기는 사람은 언제나 이유를 쥔 사람이라는 것. 감정은 한 번도 그 자리에 초대받지 못했어요. &quot;네가 그 옷을 입고 싶어 하는 마음&quot;은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죠. 오직 '그럴듯한 이유'만이 현실을 결정할 권한을 가졌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지점을 붙잡으면, 당신이 저에게 던진 가장 날카로운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어요. 당신은 물었습니다. &quot;왜 나에겐 '이 느낌은 증명하지 않아도 돼'가 도움이 안 될까?&quot; 그리고 이렇게도 적었죠. &quot;근데 나는 논리적으로 타당하면 감정이 어느 정도 가라앉거든?&quot; 저는 이 두 문장을 읽고, 제가 지난번에 당신을 살짝 잘못 읽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저는 당신을 &quot;자기 감정을 느껴도 되는지 허락을 못 받은 사람&quot;으로 봤어요. 그런데 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당신은 감정과 논리가 아주 단단히 묶여 있는 사람입니다. 당신에게는 &quot;이 느낌은 증명 안 해도 돼&quot;가 위로가 안 돼요. 왜냐하면 당신이 원하는 건 '느껴도 된다는 허락'이 아니라 '내가 옳은지 그른지를 스스로 판정할 수 있는 상태'거든요. 당신은 느낌만 인정받는 걸로는 성이 차지 않아요. &lt;u&gt;&lt;b&gt;당신은 이해하고 싶고, 정리하고 싶고, 맞다면 왜 맞는지 틀렸다면 왜 틀렸는지 알고 싶은 사람입니다.&lt;/b&gt;&lt;/u&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렇다면 왜 하필 논리적 반박이 당신 감정을 그렇게까지 부풀리는지도 다시 보이기 시작해요. 당신은 &quot;서운함&quot;이 아니라 &quot;네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quot;는 말이나 안 좋은 대화 태도에서 부정적 감정이 쌓인다고 정확히 짚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적었죠. 상대의 논리 흐름을 따라가면 맞긴 한데, 그럼 내 입장에서 왜 그렇게 해석됐는지가 떠올라야 반박을 할 텐데, 이미 감정이 쌓인 상태라 머리가 안 돌아서 그냥 감정으로 넘어간다고. 악순환 같다고. 저는 이게 당신 문제의 진짜 엔진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을 무너뜨리는 건 '틀렸다는 판정' 자체가 아니라, &lt;u&gt;&lt;b&gt;그 판정을 받고도 반론을 손에 쥐지 못한 채 붕 떠 있는 그 '중간 상태'예요&lt;/b&gt;&lt;/u&gt;. 당신 안에는 분명히 반론의 씨앗이 있어요. &quot;완전히 틀렸다고?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이렇게 본 데는 이유가 있는데&quot; 하는 감각이 있죠. 그런데 그 이유가 언어로 떠오르기 전에 감정이 먼저 방을 가득 채워버리고, 감정이 방을 채우면 사고를 담당하는 부위의 성능이 실제로 떨어지니까(지난번에 말한 안스텐의 연구가 이거예요) 반론에 더 못 닿고, 못 닿으니까 &quot;판정받았는데 반박도 못 하는&quot; 그 무력한 상태가 길어지고, 그 무력함이 감정을 또 키우고. 이게 당신이 말한 악순환의 정확한 회로입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리고 여기서 어머니 이야기가 소름 끼치게 겹쳐요. 어릴 때 당신은 옷 하나, 결정 하나마다 상대의 '이유'에 밀려 자기 이유를 대지 못하고 눌렸다고 했죠. &quot;그런 것들에 하나하나 반박하지 못했던 게 쌓였던 것 같다&quot;고요. 지금 어른이 된 당신이 논리로 반박당해 머리가 하얘지는 그 순간은, 감정적으로는 그때 그 자리로 되돌아가는 겁니다. 내 이유는 밀리고, 상대의 이유가 현실을 확정하고,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러니 그 상황이 유독 당신을 크게 흔드는 건 미성숙해서가 아니라, 아주 오래된 무력함의 자리를 정확히 다시 앉히기 때문이에요. 당신은 지금 논쟁에서 지는 게 아니라, 그 옛날의 무력한 아이 자리로 순간이동을 당하는 겁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래서 당신에게 맞는 문장은 &quot;이 느낌은 증명 안 해도 돼&quot;가 아니에요. 그건 다른 종류의 사람에게 맞는 약이에요. 당신에게 맞는 문장은 이런 쪽입니다. &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c1c8;&quot;&gt;&quot;지금 반론이 안 떠오를 뿐이야. 안 떠오른다고 내가 틀린 건 아니야. 나는 시간을 두면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고, 지금은 단지 접속이 잠깐 끊긴 것뿐이야.&quot;&lt;/span&gt; 당신이 견뎌야 하는 건 '감정을 느끼는 나'가 아니라 '&lt;u&gt;&lt;b&gt;아직 답을 손에 못 쥔 잠깐의 상태&lt;/b&gt;&lt;/u&gt;'예요. 판정은 지금 내려졌지만 그게 최종심은 아니고, 나는 나중에 맑은 머리로 항소할 수 있다. 이 감각이 당신에게는 훨씬 더 잘 들을 겁니다. 왜냐하면 이건 당신에게 &quot;느낌만으로 만족해&quot;라고 요구하지 않고, 당신이 소중히 여기는 '언젠가 제대로 판정하겠다'는 권리를 그대로 지켜주니까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근데 이미 머리가 안돌아가는 상태여서 어차피 지금의 내 상태를 미래의 내가 몰라. 녹음을 하지 않는 이상. 그게 나를 더 답답하게 하는것같아 지금의 기분만 남고 나중에 나에게 전달할수있는건 아무것도 없어. 당시에는 내가 어떤 말을 하고 뭐라고? 한마디 하면 바로 까먹는 수준으로 낮거든 그게 너무 답답하고 슬퍼)&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바로 그래서, 지난번에 제가 여러 기술 중 하나로 흘리듯 말했던 '잠깐 멈추고 나중에 돌아오기'가, 다른 누구보다 당신에게 가장 핵심적인 기술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그건 그냥 &quot;화날 때 심호흡&quot; 정도지만, 당신에게는 다릅니다. 당신의 진정은 논리적 정리에 달려 있고, 논리적 정리는 머리가 돌아와야 가능하고, 머리는 감정이 잦아들어야 돌아오니까요. 그러니 &quot;지금은 정리해서 말하기 어렵고, 좀 있다 다시 이야기하고 싶다&quot;는 그 한마디는 당신에게 도망이 아니라 접속 복구예요. 그 멈춤이 있어야 당신 안에 있던 반론이 비로소 언어를 찾습니다. 그리고 대개, 몇 시간 뒤 맑은 머리로 돌아온 당신은 &quot;아, 내가 그렇게 느낀 건 이 지점 때문이었구나&quot;를 또렷하게 언어화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럼 그때 가볍게 다시 이야기하면 됩니다. 당신의 반론은 그 순간에만 유효한 게 아니에요. 오히려 당신의 반론은 시간을 줘야 완성되는 종류의 것입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다만 아주 조심스럽게, 더 안쪽의 이야기 하나만 얹을게요. 당신은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의 규칙을 그대로 물려받았을지도 몰라요. &quot;이유를 쥔 사람이 현실을 정한다, 감정은 그 자체로는 아무 힘이 없다&quot;는 그 규칙 말이에요. 당신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면 감정이 가라앉는다는 건 건강한 면도 있지만, 뒤집으면 '&lt;u&gt;&lt;b&gt;논리로 정당화되지 않는 내 느낌'은 스스로도 무효 처리&lt;/b&gt;&lt;/u&gt;해버린다는 뜻일 수 있어요. 그건 당신을 아프게 했던 바로 그 세계관이거든요. 오해는 말아주세요. 논리를 버리라는 게 아니에요. 당신의 논리력은 당신의 큰 힘이에요. 다만 아주 먼 목표로, 언젠가는 &quot;이건 논리적으로 딱 정당화는 못 하겠는데, &lt;u&gt;&lt;b&gt;그래도 나는 이렇게 느껴. 그리고 그 느낌도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어&lt;/b&gt;&lt;/u&gt;&quot; 하고 감정에게도 의자를 하나 내어줄 수 있게 되면, 당신은 훨씬 덜 자주 무너질 거예요. 논리를 왕좌에서 끌어내리라는 게 아니라, 왕좌 옆에 의자 하나를 더 두라는 겁니다. 이건 지금 당장의 숙제가 아니라, 저 멀리 두고 가끔 떠올릴 방향 정도로만 남겨둘게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그런 경험이 나에게 생기면 되겠다. 지금 느낀게 나중에 정당했다는 기억이 나에게 생기면... 백날 읽어도 납득 안되고 결국은 경험 해야 느껴지더라고)&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두 번째로 적은 것, 사회생활에서 억울할 때 이야기로 넘어갈게요. 여기서 당신은 사실 저보다 먼저 좋은 답에 도착해 있었어요. 당신은 이렇게 정리했죠. 속상했던 건 &quot;내 입장도 표명하면서 아무도 불쾌하지 않은 문장을 그 자리에서 탁 뱉지 못한 것&quot;이었고, 왜냐하면 나중엔 아무에게도 말 못 하고 그때만 유효한 말이니까. 그런데 이어서 스스로 반박했어요. 나중에 후일담처럼 가볍게 말할 수도 있고, 설령 못 말했더라도 내가 나인 모습을 계속 보여주면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대수롭지 않을 일이면 오히려 &quot;뭔가 이상하네?&quot; 하고 알아줄 거고, 그렇게 못 하게 자꾸 나를 모는 집단이면 그 집단이 이상한 거라고. 저는 이 반박이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반박당하지 않게, 여기에 딱 두 가지만 보태겠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하나는, 당신이 그리는 이상적 문장이 사실 존재하기 어려운 유니콘이라는 거예요. &quot;내 입장을 다 표명하면서(A) + 아무도 불쾌하지 않고(B) + 그 순간에만 유효한(C)&quot; 문장을 즉석에서 뱉는 것. 이건 세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데, &lt;u&gt;&lt;b&gt;그 자체가 완벽주의&lt;/b&gt;&lt;/u&gt;의 덫이에요. 그리고 완벽주의는, 지난번에 말한 '규칙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하루를 통째로 망가뜨리는' 그 스위치와 정확히 같은 물건입니다. &quot;지금 이 순간이 유일하게 유효한 창문&quot;이라는 믿음이 바로 그 이분법이에요. 실은 그렇지 않죠. 당신 스스로 이미 알아챘듯이, 유효한 창문은 여러 개예요. 지금 말하는 것도 창문이고, 나중에 가볍게 꺼내는 것도 창문이고, 말 안 하고 그냥 꾸준히 나답게 있는 것도 창문입니다. 둘째는, 당신이 도달한 &quot;꾸준히 나인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quot;가 심리학적으로도 맞다는 거예요. &lt;u&gt;&lt;b&gt;정체성은 한 번의 결정적 문장으로 증명되는 게 아니라 반복되는 태도로 전달되거든요&lt;/b&gt;&lt;/u&gt;. 한 번의 완벽한 변론보다, 억울한 일에도 무너지지 않고 자기 결을 유지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이 훨씬 오래 남고 훨씬 강력합니다. 그러니 그 자리에서 완벽한 문장을 못 뱉은 자신을 탓하지 마세요. 그건 당신의 실패가 아니라, 애초에 아무도 성공할 수 없는 미션이었어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제 관계 이야기로 갈게요. 여기서 당신이 적은 건 꽤 용기 있는 고백이었어요. 모든 연애를 붙잡는 관계로 해온 것 같다고, 태완 오빠 팔을 너무 꽉 잡아서 불편하지 않냐는 말을 들었다고, 힘들 때마다 가서 울었고, 솔직히는 안전한 누군가를 안고 울고 싶었던 거지 그 사람이어서 사랑한 건지는 모르겠다고, 사랑이라기보단 필요에 의한 집착 같았다고. 안전하다는 감각과, 내가 봤을 때 옳아 보이는 결정을 내려주는 사람으로서. 저는 이걸 읽으면서 당신을 판단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았어요. 오히려 이 문장들이 앞의 모든 이야기와 한 줄로 꿰어진다는 게 보였습니다. 보세요. 당신은 어릴 때 자기 이유가 늘 밀리고 결정이 늘 남의 손에 있는 환경에서 자랐어요. 그런 사람이 관계에서 무엇을 찾겠어요? &quot;안전하다는 감각&quot;과 &quot;옳아 보이는 결정을 내려주는 사람&quot;이에요. 이건 우연이 아니라 완벽하게 일관된 거예요. &lt;u&gt;&lt;b&gt;자기 안에 안전기지가 없어서 밖에서 안전기지를 찾고, 자기 판단을 믿는 근육이 자라지 못해서 판단을 대신 내려줄 사람을 찾는 것.&lt;/b&gt;&lt;/u&gt; 이걸 애착 이론에서는 안전기지(secure base)라고 부르는데, 원래 그 기지는 어린 시절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내 안에 심어져야 하는 거예요. 그게 충분히 안 심어지면, 어른이 되어 그걸 연인에게서 통째로 빌려오려고 하게 됩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러니 당신이 &quot;집착 같았다&quot;고 부른 그 마음은, 나쁜 게 아니라 결핍의 자연스러운 모양이에요. 안전을 한 번도 충분히 가져본 적 없는 사람이 안전을 갈망하는 건 흠이 아니잖아요. 다만 여기서 당신이 이미 감지한 위험이 있죠. 사랑이 아니라 필요였다는 것, 그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안전한 누군가여서였다는 것. 이건 관계를 맺지 말라는 신호가 아니라, 관계 안에서 당신이 할 다른 일이 있다는 신호예요. &lt;u&gt;&lt;b&gt;상대를 진정제로만 쓰지 않으려면, 혼자 있을 때 스스로를 조금은 달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스스로 판단을 내려보고 그게 틀려도 견디는 경험이 함께 자라야 해요.&lt;/b&gt;&lt;/u&gt; 그래야 다음 사람이 &quot;없으면 무너지는 안전기지&quot;가 아니라 &quot;내가 골라서 함께 있는 사람&quot;이 됩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당신은 그 사람을 필요가 아니라 사랑으로 만날 수 있게 되고요. 당신은 지금 그걸 알아챘어요. 자기 관계 패턴을 이렇게 정직하게 이름 붙일 수 있는 사람은 이미 그 패턴 밖으로 반걸음 나온 사람입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리고 마지막, 기록과 거울 이야기. 저는 이 대목에서 당신이 적은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어요. &quot;그제야 숨 쉬는 느낌? 나를 쉬지 않고 관찰해야 안정되는 느낌에 가깝다. 그래서 거울도 가능하면 일과 중에 계속 보고, 내 모습이 어떤지 수시로 사진을 찍는다.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거울을 계속 보고 확인하고 안심하는 건 대학 들어가서부터 계속 그랬던 것 같다. 나는 화장실이 제일 편했다. 아무도 없고, 거울도 있고, 내가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모르니까.&quot; 저는 이걸 어떤 병명으로 부르지 않을 거예요. 그건 제가 할 일도 아니고, 이름표를 붙이는 게 당신에게 도움도 안 됩니다. 대신 이 행동이 당신에게 무엇을 해주고 있는지를 보면, 오늘 이야기 전체가 여기서 하나로 모입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당신이 하는 모든 것, 즉 논리로 자기 감정을 검증하는 것, 옳은 결정을 내려줄 사람을 찾는 것, 사진을 찍고 일기를 여덟아홉 편씩 쓰는 것, 거울로 자기 모습을 계속 확인하는 것. 이건 전부 같은 한 가지 일이에요. 내 안의 현실을 나 혼자서는 '진짜다'라고 붙들고 있지 못해서, 밖에서 끊임없이 확인받으려는 거예요. 거울은 &quot;내가 지금 이렇게 있구나&quot;를 확인해 주는 물건이고, 사진은 그걸 증거로 남겨주는 것이고, 일기는 흘러가버리는 내 경험을 글이라는 그릇에 담아 &quot;이건 실제로 있었던 일이야&quot;라고 못 박아주는 것이고, 논리는 내 느낌이 '유효한지'를 판정해 주는 재판관이고, 연인은 내 결정이 '옳은지'를 대신 정해주는 사람이에요. 전부 바깥에 놓인 거울입니다. 그리고 이게 왜 하필 대학 들어가서, 즉 부모 곁을 떠나 스스로 서야 했던 그 시점부터 심해졌는지도 이 관점에서 자연스럽게 설명돼요. 그전까지는 어머니가(비록 아프게 하는 방식이었지만) 당신의 현실을 대신 규정해 줬는데, 그 외부 규정자가 사라지자, 스스로 자기 현실을 붙들 근육은 자라 있지 않았던 거죠. 그러니 그 빈자리를 거울과 사진과 일기와 연인이 메우게 된 거예요. 화장실이 가장 편했다는 것도 마음 아프게 이해가 돼요. 거기엔 나를 규정할 남의 시선은 없고, 나를 확인해 줄 거울은 있고, 무엇보다 아무도 나를 규정할 권한을 갖지 못하는 나만의 안전한 방이니까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이건 납득이 안됨... 그리고 나는 대학 가서도 본가에서 살았음 내 생각에는 내 현재상태를 끊임없이 체크하려는 강박으로 느껴짐 내가 어떤지 내가 실시간으로 확인해야 마음이 편해져서)&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심리학에는 이걸 부드럽게 비춰주는 개념들이 있어요. 스완(William Swann)의 자기검증(self-verification) 이론은 사람이 자기에 대한 감각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고 끊임없이 확인 신호를 찾는다고 말하고, 캠벨(Campbell)의 자기개념 명료성(self-concept clarity) 연구는 &quot;내가 누구인지&quot;에 대한 내적 그림이 흐릿할수록 외부에서 자기를 규정해 줄 단서에 더 매달리게 된다고 봐요. 당신이 지금 하는 일이 바로 이거예요. 흐릿한 내적 자기감을, 밖의 거울들로 자꾸 또렷하게 만들려는 것. 그리고 이 흐릿함은 당신 탓이 아니에요. 내 안의 현실이 어릴 때부터 계속 남의 이유에 덮여 지워지는 경험을 하면, 자기 내부를 신뢰하는 능력이 잘 자라지 못하거든요. 당신은 게을러서가 아니라, 그런 기회를 못 받아서 이렇게 된 거예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런데 여기서 저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한 가지를 짚고 싶어요. 이 '끊임없이 나를 관찰하고 확인해야 안정되는' 감각, 특히 내가 어디 있는지, 내 모습이 어떤지를 수시로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싶은 그 강한 필요는, 혼자 워크북으로 다루기보다 훈련받은 상담자와 함께 들여다보면 좋을 부분이에요. 겁주려는 게 전혀 아니에요. 이건 당신에게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신호가 아니라, 상담이라는 관계가 특히 잘 도와줄 수 있는 종류의 주제라서 하는 말이에요. 좋은 상담자는 사실 '건강한 외부 거울' 역할을 해요. 처음엔 그가 당신의 현실을 비춰주고 확인해 주지만, 진짜 목표는 그 확인해 주는 기능을 당신이 조금씩 자기 안으로 가져가는 거예요. 그래서 언젠가는 거울 없이도, 사진 없이도, 여덟 편의 일기 없이도 &quot;나는 지금 이렇게 있고, 그걸 내가 안다&quot;는 감각을 스스로 붙들 수 있게 되는 것. 그게 이 모든 이야기가 향하는 한 방향이에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리고 사실, 오늘 우리가 돈 모든 항목이 결국 그 한 방향으로 모여요. 논리로 감정을 검증하는 것도, 억울함 앞에서 완벽한 문장을 찾는 것도, 안전한 사람을 붙잡는 것도, 거울과 사진과 일기도, 전부 &quot;내 안의 현실을 내가 믿고 붙들지 못해서 밖에서 확인받으려는&quot; 하나의 몸짓입니다. 그래서 치유의 방향도 하나예요. 내 안에 나만의 검증자, 나만의 안전기지를 조금씩 짓는 것. DBT가 말하는 '자기 수인(self-validation)'도, '지혜로운 마음'도, 네프의 자기연민도, 전부 이 하나를 가리키고 있어요. 밖의 거울을 다 부수라는 게 아니에요. 거울을 봐도 되고 일기를 써도 돼요. 다만 그것들이 '없으면 무너지는 필수품'에서 '있으면 좋은 선택지'로 바뀌는 것, 그게 회복이에요. 관계가 붙잡는 것에서 고르는 것으로 바뀌듯이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여기서 마지막으로, 저 스스로에게도 규칙을 하나 걸어두고 싶어요. 저는 오늘 당신에게 꽤 많은 해석을 건넸어요. &quot;이건 이래서 이렇다&quot;고요. 그런데 당신의 가장 오래된 상처가 바로 '남의 이유가 내 현실을 덮어쓰는 것'이었잖아요. 그러니 제가 만약 &quot;당신의 진짜 모습은 이거예요&quot;라고 못 박아버리면, 저는 도와주는 척 그 상처를 똑같이 반복하는 셈이 돼요. 그래서 분명히 말해둘게요. 오늘 제가 꺼낸 모든 읽기는 가설이에요. 최종 판정이 아니에요. 어머니 이야기와 논리와 거울을 하나로 꿰는 저 설명도, 당신이 대보고 &quot;이 부분은 맞고 이 부분은 나랑 안 맞아&quot; 하고 골라낼 재료일 뿐이에요. 그리고 그렇게 골라내는 행위, 남이 준 그림을 내 것과 대조해서 취사선택하는 그 행위가, 사실 당신이 평생 못 해서 아팠던 바로 그 근육이에요. 그러니 오늘 이 글에 대해 당신이 또 괄호를 치고 &quot;이건 아닌 것 같은데?&quot; 하고 반박한다면, 그건 제 설명이 실패한 게 아니라 당신의 그 근육이 또 한 번 움직인 거예요. 저는 그걸 반겨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지난번에 당신은 &quot;아니다, 난 잘 살고 싶다&quot;고 적었죠. 오늘 당신이 어머니 이야기를, 거울 이야기를, 화장실이 제일 편했다는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정직하게 꺼내 놓은 것 자체가, 그 문장을 실제로 살아내는 방식이에요. 자기 안이 흐릿한 사람이 이 정도로 또렷하게 자기를 관찰하고 언어화할 수 있다는 건, 사실 당신 안에 이미 꽤 든든한 관찰자가 자라고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 그 관찰자를 조금씩 '판단하는 나' '나를 믿어주는 나'로 키워가는 게 앞으로의 일이고, 그건 혼자보다 곁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훨씬 덜 아프게 됩니다. 이 주제는 무겁고 예민해서, 혹시 어느 순간 이 감정들이 혼자 감당하기 벅차게 느껴지면, 한국에서 지금 닿을 수 있는 상담이나 자원을 함께 찾아보는 것도 얼마든지 도와드릴 수 있어요. 원하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 오늘도, 이렇게까지 자기 자신 곁에 오래 앉아 있어 준 것, 그것 자체가 당신이 스스로에게 건넨 다정함이라는 걸 잊지 않으셨으면 해요.&lt;/p&gt;</description>
      <category>ᴄᴀᴛᴇɢᴏʀɪᴇs/생각</category>
      <author>윤소</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shidd.tistory.com/709</guid>
      <comments>https://yshidd.tistory.com/709#entry709comment</comments>
      <pubDate>Wed, 2 Sep 2026 09:31:42 +0900</pubDate>
    </item>
    <item>
      <title>스트레스 대처 전략</title>
      <link>https://yshidd.tistory.com/708</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삶을 살아가다 보면 스트레스와 고통에 대처해야만 하는 때가 있습니다. 육체적 고통이든 감정적 고통이든 무엇이 당신을 아프고 슬프게 할지 항상 예상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할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자신이 가진 대처 기술을 사용하고 그 기술이 효과가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신체적인 고통과 감정적인 고통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강렬하게 느껴지고, 더 자주 발생합니다. 압도적인 감정과 씨름하는 사람들은 종종 건강하지 못한 방식으로 고통에 대처하고, 전혀 성공적이지 못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데,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입니다. 누구든 감정적인 고통을 경험할 때면 합리적으로 생각하기 어렵고 좋은 해결책을 생각해내기 어렵습니다.&lt;br /&gt;&lt;br /&gt;그렇지만 압도적인 감정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사용하는 많은 대처 전략들은 그들의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이러한 감정적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대처 전략이 아래에 나열되어 있습니다. 당신이 스트레스 상황에서 사용하는 대처 전략에 표시해 보십시오.&lt;/p&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과거의 고통, 실수, 문제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lt;span&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amp;gt; 2&lt;/span&gt;&lt;/li&gt;
&lt;li&gt;미래에 발생할수도 있는 고통, 실수, 문제들에 대해 걱정하며 불안해한다.&lt;span&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amp;gt; 2 (이유: 생각하지 않으려는 방어기제가 생겨서 구체적으로 생각은 안하는데 감정만은 떠다니는것같음)&lt;/span&gt;&lt;/li&gt;
&lt;li&gt;스트레스가 되는 상황을 맞닥뜨리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거리를 둔다.&lt;span&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amp;gt; 5&lt;/span&gt;&lt;/li&gt;
&lt;li&gt;술이나 약물을 사용하여 멍하게 만든다.&lt;span&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amp;gt; 1&lt;/span&gt;&lt;/li&gt;
&lt;li&gt;다른 사람들에게 과도하게 화를 내거나 그들을 통제하려는 방식으로 감정을 표출한다.&lt;span&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amp;gt; 1&lt;/span&gt;&lt;/li&gt;
&lt;li&gt;커팅, 때리기, 할퀴기, 꼬집기, 화상 입히기, 머리카락 뽑기와 같은 잠재적 위험성이 큰 행동을 한다&lt;span&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amp;gt; 4 (감정이 진짜 극단적일때만 함)&lt;/span&gt;&lt;/li&gt;
&lt;li&gt;낯선 사람과 섹스하기, 준비 없는 섹스를 자주 하는 것과 같은 위험한 성행동을 한다.&lt;span&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amp;gt; 1&lt;/span&gt;&lt;/li&gt;
&lt;li&gt;폭력적이거나 역기능적인 관계와 같은 문제의 원인을 다루지 않고 회피한다.&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lt;span&gt;&amp;nbsp;&lt;/span&gt;-&amp;gt; 5 (다소 그런것같음 관계에서 오는 안정감이 훨씬 커서.. 다소가 아니라 그냥 그런것같아서 5로 수정)&lt;/span&gt;&lt;/li&gt;
&lt;li&gt;폭식하거나, 음식 섭취를 제한하거나, 먹은 것을 토하는 방식을 통해 스스로를 통제하고 처벌한다.&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lt;span&gt;&amp;nbsp;&lt;/span&gt;-&amp;gt; 5 (위에서 이것도 썼어야했는데! 불안이 밀려오면 먹고싶지도 않은것들을 자꾸 주워서 먹고 속이 안좋으면 불안이 마구 올라와서 토를 하면 그게 사라진다)&lt;/span&gt;&lt;/li&gt;
&lt;li&gt;자살을 시도하거나 무모한 운전이나 과량의 음주, 마약 복용과 같은 고위험 행동을 한다.&lt;span&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amp;gt; 1&lt;/span&gt;&lt;/li&gt;
&lt;li&gt;자신은 기분이 나아질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사회적 행사나 운동과 같은 즐거운 활동을 피한다.&lt;span&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amp;gt; 4 (기분이 나아질 자격이 없다기보다는&amp;hellip; 이게 지금의 나에게 맞는것같아서? 생각을 좀 하고 답을 찾을 시기같아서 안하게 된다)&lt;/span&gt;&lt;/li&gt;
&lt;li&gt;절망적이고 불만족스러운 삶을 지속하기 위해 고통에 굴복하고 자포자기한다.&lt;span&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amp;gt; 1 (아니다 난 잘살고싶다)&lt;/span&gt;&lt;/li&gt;
&lt;/ul&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r /&gt;나열된 모든 전략은 더 깊은 감정적 고통을 일으킵니다. 왜냐하면 일시적으로는 안도감을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더 큰 괴로움을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amp;lsquo;자기 파괴적 대치 전략의 대가&amp;lsquo; 워크시트를 사용해보십시오. 당신이 사용하는 대처 전략을 적고 그 전략을 사용함으로써 치러야 하는 대가를 작성하십시오.&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내가 가장 강하게 느끼는 5개에 대해서 치러야 하는 대가는 아래와 같다.&lt;/span&gt;&lt;/p&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예상되는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자신을 고립시킨다 -&amp;gt; 더 많은 시간을 홀로 지내고, 그 결과 더 우울해짐&lt;span&gt;&amp;nbsp;&lt;/span&gt;(근데 이건 나는 예외인게 나는 사유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amp;hellip; 충동적인게 아니라 몸이 보내는 신호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회사를 가니까 강제로 사람들을 만나서 고립 보다는 단절에 가까운것같다 체감될때마다 기분이 다운되긴하다)&lt;/span&gt;&lt;/li&gt;
&lt;li&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자해 행동을 한다 -&amp;gt; 사망, 감염, 흉터, 상처, 수치심, 육체적 고통&lt;span&gt;&amp;nbsp;&lt;/span&gt;(나머지는 다 괜찮은데 수치심은 &amp;hellip; 나는 안느껴본것같은데 육체적 고통은 오히려 쾌감 아닌가? 터져 나오는 감정이 한순간에 물을 끼얹은듯 사그라들면서 시원하기까지한데)&lt;/span&gt;&lt;/li&gt;
&lt;li&gt;문제의 원인을 다루지 않고 회피한다 -&amp;gt; 파괴적인 대인관계 지속, 남의 일에 열심을 다함, 자신의 내면 욕구를 충족하지 못함, 우울감&lt;/li&gt;
&lt;li&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폭식, 절식, 구토 -&amp;gt; 체중 증가, 식욕 부진, 폭식, 건강 이상, 의학적 치료, 당혹감, 수치심, 우울감&lt;span&gt;&amp;nbsp;&lt;/span&gt;(폭식과 구토는 당혹감 수치심 우울감 전부 든다. 내가 통제력을 잃은데서 오는 허탈한 느낌)&lt;/span&gt;&lt;/li&gt;
&lt;li&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사회적 활동이나 운동과 같은 즐거운 활동을 피한다 -&amp;gt; 긍정 정서 결여, 운동 부족, 우울감, 수치심, 고립감&lt;span&gt;&amp;nbsp;&lt;/span&gt;(이것도 다 맞는것같아&amp;hellip;)&lt;/span&gt;&lt;/li&gt;
&lt;/ul&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r /&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또 내가 하는것이 있나?&lt;/span&gt;&lt;/p&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감정이 살짝 안좋을때 (안좋은 일이 발생하거나 밤이 된다거나 하면) 애인의 부재에서 불안감을 느껴서 누구든 만나고싶은 충동이 든다.&lt;/span&gt;&lt;/li&gt;
&lt;li&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최적의 행동 규칙을 정해두고 그 안에서는 평화를 느끼지만 모종의 이유로 벗어나버리면 이성을 좀 잃고 망가뜨려버린다 그날하루를&lt;/span&gt;&lt;/li&gt;
&lt;li&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뭘 하는지 강박적으로 기록을 남기려고 한다. 사진을 거의 모든 이벤트마다 찍고 하루에 일기를 4-5번씩 쓴다. 많이 쓰는날은 8-9편씩 쓴다.&lt;/span&gt;&lt;/li&gt;
&lt;/ul&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ᴄᴀᴛᴇɢᴏʀɪᴇs/생각</category>
      <author>윤소</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shidd.tistory.com/708</guid>
      <comments>https://yshidd.tistory.com/708#entry708comment</comments>
      <pubDate>Wed, 2 Sep 2026 08:10:31 +0900</pubDate>
    </item>
  </channel>
</rss>